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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 단비 Nov 16. 2023

나를 위로해 준 빛, 노을

이호테우 노을 고문관

노을은 매일 진다. 그런데 단 하루도 같은 노을빛은 없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노을빛은 다채롭다.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여름이다. 뜨거운 용암 같은 태양이 바다 수평선을 넘어가면 한여름의 노을빛은 바닷물까지 붉게 물들인다.


나는 해 질 녘의 노을을 좋아한다. 내  삶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그때.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삶을 포기하고, 힘겹게 선택한 새로운 삶을 가족마저 이해해 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몹시 외롭고 슬펐다. 그때 내 마음을 말없이 위로해 준 건 노을이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서 멍하니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온해진다. 마치 아무도 없는 고요한 성당에 앉아 은은한 조명 아래서 성체조배를 하는 기분이 든다.

노을 인연은 제주로 이주하면서 조금씩 깊어졌다. 제주로 이주할 때 의도치 않았는데 노을 명소로 유명한 동네에 집을 얻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척 신기한 일이다.  이런  섭리가 아닐까?

제주로 이주하고 나서 일을 쉬는 날엔 거의 매일 동네 바닷가로 노을마중을 나갔다. 근심걱정이 있을 때, 속상하거나 슬플 때, 가만히 지는 해를 바라보면 근심걱정도 해와 함께 저물었다. 지금은 노을과 속 깊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식사 때가 되면  배가 고픈 것처럼 일이 바빠서 노을을 보지 못한 날에는 노을 허기가 진다. 그런 날엔 핸드폰 사진첩에 찍어 둔 노을 사진을 꺼내 본다. 마음에 노을이 부푼다.

노을이 특별히 예쁜 날에는 문득 생각나는 사람과  함께 노을을 보고픈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보낸다. 그 사진들을 보고 누군가는 내게 노을 고문관이라고 말한다.


나의 노을 사진이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안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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