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달리기 위해 쉬어가는 것.

by 휘진

10일부터 13일까지 3박 4일의 일본 여행이 끝이 났다. 여행을 가기 전 우연히 좋은 일자리를 소개받았고 꽤 많은 도움과 자문을 받을 수 있었다. 자소서 피드백부터 직장의 장단점 등 아주 꼼꼼히 준비하고 무엇 하나 건성으로 한 것이 없이 대학 입시를 준비할 적에 썼던 자소서와 대학교 강의 때마다 교수님께서 써보라고 하시는 자소서들보다도 훨씬 공들였다. 하지만 전부 엎었다. 잠시 먼지 좀 쌓이게 두고 손을 놓기로 결정했다. 이미 수정까지 끝나 최종적으로 완성이 되어버린 자소서를 지원부터 안 하기로 결정한 것은 내게 있어 나름 커다란 결심이 필요했다.


참 쉬질 못하는 성격이다. 나는 자기 연민이 다분하다. 병적인 집착은 아니지만 뭔가 나름의 훈장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기억해 두는 편이다. 19년에는 대학 생활에 바빴다. 갑자기 떠안게 된 동아리장 직에 하교 후 시간은 없었고, 방학도 관련 교수님들의 연구원 같은 역할로 컴퓨터만 두드리기 바빴다. 20년에는 코로나가 모든 걸 뒤바꿨다. 그럼에도 실습만 두 번을 한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으면서도 조금은... 왜 남들은 다 단축 실습인데 내가 고른 곳만 그런 게 없었는지. 21년에는 상반기를 내내 3교대로 일하고 입대하였다. 그렇게 22년 12월에 전역하면서 이 바쁜 4년간의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었다. 사실 더 이어 갈 생각이었다. 일을 소개받았고, 실제로 일도 알아보고는 있었다. 당장 2월부터 출근을 하면 어떨까. 고작 전역한 지 1 달인데 뭔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어서 찝찝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전부 뒤엎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해 버렸다.


그래봤자 2월, 길어봐야 3월까지 놀 계획이다. 말했다시피 참 쉬질 못하는 성격이라. 그래도 1월을 쉬는 것은 참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쉬기로 결정했다. 소개받은 곳도 3교대였다. 나오자마자 다시 3교대인 것도 꽤 부담이었고, 휴일이 퇴근한 날이 휴일인 것도, 그마저도 주마다 바뀌는 것도 부담이었다. 일 자체는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내가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정한 이유와 아주 부합하는 것이라 매력적으로 와닿았다. 근무 체계가 그러하니 급여가 센 것도 한 몫했고. 하지만 그것만 보고 지금 몸을 던지는 것은 내가 나를 망가뜨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느껴 포기했다. 분명 금방 지칠 것이다. 일을 하고 싶다가도 출근하면 하기 싫어지는데 그것도 금방 느끼게 될 것 같고, 버틸 수 있을까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물론 어찌어찌 버텨냈겠지만 그렇게 악으로 버티고 싶지 않았다. 이 결정마저도 확신을 받고 싶어 내 가장 친한 친구, 멘토인 친누나와도 길게 대화했다.


모든 결정을 내리고 나니 그동안 일을 하는 것에 왜 그렇게 조급해했는지, 왜 그렇게 눈을 가리고 달렸는지 조금 허탈했다. 나를 쫓고 있고 떠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왜 내가 나를 그렇게 몰아붙였을까라고 생각하니 착잡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어라, 금세 아무렇지 않았고 지금은 휴식에 힘을 다하고 있다. 중ㆍ고등학교 동창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안 만났다. 이번 주, 다음 주 약속을 잡았다. 군 복무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전 직장 주무관님한테도 연락을 드려볼까 생각하고 있다. 내 은사님과의 약속도 잡아야겠다. 집에 있는 것이 제일 편하고, 나가는 것에 큰 에너지를 쏟는 편이지만 이 사람들은 나아갈 에너지를 주는 감사하고 귀한 인연들이라.


숨을 헐떡이는 상태로 얼마나 달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만족스러운 호흡을 하기 위해 잠깐 발을 멈췄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다시 달리고 싶다. 다시 달리기 위해, 적어도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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