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낡아 헤져버린 것들

by 휘진

색이 바랜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 찬란하다 생각했던 과거의 모습을 담아둔 내 모습과 내 대학생활, 풍경들의 앨범과 즐겨 입었던 옷들, 취향이 바뀌어 더 이상 듣지 않게 된 곡들까지도. 그래도 아직도 버릴 것이 잔뜩 남았다. 첫 아이폰이라고 의미 부여하면서 방치하고 있는 아이폰7의 상자와 옛 사진이 담겨있는 갤럭시 노트 3, 중고등학교 때 쓰던 학용품이 담겨있는 봉투가 아직 구석에 처박혀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아마 나보다도 나이가 많을 나무 서랍도 버려야 한다. 새로운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 비우기보단 이제 놓을 때가 된 것 같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생각하면서, 채울 때가 아니더라도 비울 때는 올 수 있는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내 늙은 감정과 낡은 가치관들도 과감히 버리고 있다. 버리고 있기보단, 아주 자연스럽게 버렸다. 다 먹고 남은 배달음식의 포장 용기처럼 무용지물의 무언가와 같은, '따위'라고 표현할 만한 무언가가 되었기에 멀리 던졌다. 감상과 감정을 잃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에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속상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변한 것이고 그 속에서도 성장은 있었을 것만 같다. 나는 믿음이 부족하고,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 같지만 생각보다는 꽤 나를 믿는 모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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