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감정에 대한 표현을 좀 줄이게 된 것 같다. 일이 정리되고 시간이 비어(...) 오래전에 써왔던 글들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했구나', '글로써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구나'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글들은 사라지고 순간의 감정을 토해내기만 하는, 일기장 같은 글들만 나는 써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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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며 그렇게 과거들을 방치한 것일까. 내 수치와 흑역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음에도 불구, 나는 내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있었던 걸까. 어제는 오랜만에 대학로, 이화 벽화마을을 찾아갔다. 이곳이야말로 정말 21년 이후론 단 한순간도 찾아간 적이 없었다. 2017년의 사진을, 2018년의 사진을, 2019년, 2020년의 사진을 예쁘다고 간직하고 있었던 주제에 나는 3년을 방치했다. 다시 찾아간 이화 벽화마을은 없어진 그림만큼이나 새로운 그림들이 생겼으며, 2017년, 처음 봤던 철제 작품의 검정색은 2024년, 녹이 슬어 커피와 같은 색을 자아내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예술이 아니라 할지언정, 내게 있어 그 작품은 이제부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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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구름은 제일 좋아하는 뭉게구름이 많으면서도 하늘의 푸른색을 적당히 남겨두는 모양이었다. 햇빛은 강하지 않았으며, 3시 정도가 되었을 뿐인 거리는 시원했다. 한동안 비어있고, 문을 열지 않았던 가게들은 내가 찾지 않던 3년 사이, 거리와 어울리는 가게가 들어와있었다. 가족과, 친구들과, 연인과 함께 찾은 사람들로 그 높고도 긴 길이 메워져있었고, 귀에서 흘러나오는 '橙'라는 해외의 곡은 아름답게 들렸다.
'언제라도 우리들은 그날 그대로야.', '언젠가는 우리들도 어른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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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도 일기장 같은 글이다. 그냥, 지금의 주의는 싸우지 않고, 친절할 수 있으면 친절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다. 가족의 중립자 역할을 맡고 있다고 정말 생각한다. 어딜 가도 이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싸우지 않는 소통이 베스트가 아니라 많이 말해왔고, 그럼에도 욕심이기에 싸우지 않아 보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2024년의 최선은, 싸우지 않는 소통이라고도 생각한다. 적이 많고, 나는 언제든 물어뜯길 수도, 물어뜯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손을 내밀어 보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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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는 바위를 이길 수 없고, 바위는 보자기를 이길 수 없고, 보자기는 가위를 이길 수 없다...라고 하지만, 가위도 감싸버리는 그 손바닥이 되어볼 것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싸움이, 때론 관용과 포용이 필요한 싸움과 소통이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