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이 지난 지 한참이다. 이제는 '소설'을 앞두고 있고, 동시에 내 소설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진부하고 오글거릴 수 있지만, 흔한 로맨틱과 관계의 정립은 그런 진부한 것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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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과 다를 것이 없다. 감정의 파도도, 일의 흐름도, 이 추위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더위는 그럼에도 끝이 났다. 영원이란 것은 역시 없기에.
가을의 적당한 포근함은 꽤 오래 갔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날씨는 그렇게 춥지 않았다. 입동이 지났지만 사람들의 옷차림은 평범한 겨울이 아니었다. 물들어있던 단풍만이 지금이 가을이라고 알려주고 있었고, 계절의 단서가 없었다면 봄과 다를 것이 없었던 지나치게 포근한 날씨였다. 하지만, 11월 16일 점심부터 이어진 비에 이 포근함도 숨이 멎었다. 강인했던 여름을 앗아간 이 가을은 이제야 추위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오늘부터 시작된 차가운 숨은 어쩌면 지나치게 차가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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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하나 닫은 것으로는 전혀 이 냉기를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진열해놓은 프라모델을 둘 곳이 없어 그 바람을 견뎌내며 글을 써내려 간다. 순식간에 찾아온 겨울은 후드 집업과 MA-1재킷도 부족하다고 생각 될 정도였다. 이 추운 겨울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시작되는 순간보다 끝이 나는 순간이 더 행복한 건 어째서일까. 어쩌면 우울에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작되어 보낼 1월부터 12월의 오랜 기간보다 모든 책장을 덮어내는 12월이 가까워질 수록 감정은 고조된다. 모든 것이 지나 이제 이 한 해도 추억으로 미뤄둘 수 있다는 해방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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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 같은 건 없다. 내가 하는 일과 내 업무에 대한 사명감은 있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일을 한다는 것, 내가 없어도 누군가는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일에는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체감하고 있고, 그 하나면 나는 충분하다. 달리 사회복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2년이 지나가고 있고, 내년이면 3년차이다. 인정받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것은 정당한 불만일까, 무례한 오만일까. 11월 19일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게 될 이 불안정한 감정을 어서 빨리 털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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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으로 오해하는 애정일까, 애정이라 속단하는 우정일까. 아직 3주 정도가 흐른 기간이기에 모든 것이 속단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은 올해의 모든 계절에서 느꼈던 것과는 아주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금 더 용기를 내는 것이 좋을까, 도망칠까 두려워 나를 조금 더 숨겨야 할까. 모든 것이 망설여진다. 이 감정에 거짓은 없으며 나는 나와 네 생각보다 더 너를 신경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점점 앞서기 시작한다.
아주 의미 있는 한 걸음은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니, 나는 조금 더 나를 제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