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쉬며, 발버둥 치고 있어.

by 휘진

키보드를 얼마 만에 잡은 지 모르겠다.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나는 결국 여전히 건강하지 않다. 그러기 위한 글을 써내겠다고 다짐하였으나 그러지 못하여, 표현조차 하지 않고 속으로 삭히는 방법만 새로이 배우게 되어 여전히 건강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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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올려다본 것이 언제가 마지막인지 모르겠다. 비가 오기 전, 또는 비가 그친 뒤 보이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하늘을 다 가려버릴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은,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 나는 그것이 정말로 좋았다. 하늘 사진만 찍어댈 정도로, 어느 곳이든 하늘만 담길 수 있다면 스마트폰의 셔터를 그렇게 눌러댔었는데, 그때의 나는 없어진 지 오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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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버리며, 욕심이 늘고, 사람을 품으며, 사람을 버리고 있다. 생각으로는 무엇을 못하겠냐는 말이 있지만, 내 생각은 어딘가 위험하다. 모든 것이 말이다. 내 생도, 타인의 생도, 그들의 가치관과 나의 이기심도, 타협하지 못해 굴복시키고, 굴복하려 하는 이 모든 나의 생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누군가를 위한 배려와 이타심은 결국은 이기심에 비롯된다는 말에 대해선 여전하다. 나는 저 사람을 돕는 것이 내가 돕고 싶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 사람이 힘들다고 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지치면 하지 않겠지만, 나는 지쳐서 외면하기보단, 다시 고개를 돌려 돕고자 하는 길을 찾는 편이다. 지난 내 삶이 그랬으며, 여전한 나의 행동원리이다. 하지만 '어디까지 내가 감당해야 하는가', '저 사람은 내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내가 가까이 여기고 싶은 사람인가'라는 기준을 재기 시작했다는 점, 내 이타심은 점점 이기심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아니, 이건 너무 비관적일까? 좋게 말하여, 나는 나를 조금 더 신경 쓰게 되기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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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두렵다. 나는 내 행동을 좋아했고,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이유 없는 도움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고, 갚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유 없는 도움을 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즐거웠다. 그저 내게 고맙다고 하는 그 인사말과 웃음 짓는 표정, 그것이면 충분하다. 애초에 보상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그런 내가 그 이유 없는 도움에 대해 이런저런 조건을 대기 시작한다는 건, 나는 내가 사랑하는 내 열정과 내 모습을 잃게 될 것만 같은 신호인 것만 같다. 나는 아직 나를 잃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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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하늘을 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무작정 밖으로 나서 온갖 명소를 거닐고 사진을 찍어대던 나는 사라졌다. 이런 신호를 눈치챌 새도 없이 말이다. 아니, 외면했을까. 지금과 같은 경고가 있는데도 나는 외면했던 것일까. 이젠 알 수조차 없다. 적어도 지금은, 지금 모습만큼은 지키고 싶다. 이것이 성장일 수 있겠으나, 내 번뇌는 성장통과 비슷한 미래의 아픔일 수 있겠으나, 내 감정은, 내 그릇은 아직 그것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깊어지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나는 아직 성장해서는 안 되는데, 선택은 강요받는다. 선택은 자유로우며, 미래는 선택이란 과정에 대한 결과이겠으나, 그 과정에 발을 딛게 되는 순간은 때론 강요받게 되는 순간이 더 많다. 자유를 강요받는 것은 과연 자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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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은 알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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