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지나, 여전히

by 휘진

나는 힘들 때, 또는 내 정신 건강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을 때 보통 글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 위에 손을 얹는 것까지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고자 한다면 꽤 나름 술술 써지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23년에 써내었던 24절기를 기록하는 글은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멍청하기도 하지, 비워야만 채울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해놓고 비울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글로써 나를 채우고자 하였으니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않은, 지금보다도 조잡한 글을 써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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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푹 빠진 노래가 있다. '31'. 나는 보통 글이나 만화, 드라마 대사와 같은 것들에서 영감을 받아 나를 대입, 어쩌면 투영까지 시켜 글을 써낸다. 좋게 말하면 그만큼 몰입을 잘 하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자면 의미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킨더조이(...)가 더 익숙한 '카더가든'의 '31'은 발매 당시에 들었을 때 느꼈던 여운보다, 요즘 느끼고 있는 여운이 더 큰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 물론 나는 31세도 아니지만, 말로써 형용하기엔 어려우나 마음을 건드리는 듯한 이 느낌은 나는 이 곡에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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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때나 들어줬으면 한다는 원곡자의 코멘트가 있었다. 아무 때나 들어도 좋지만, 이럴 때 들으면 특히 더 좋은 곡이라 와닿는 것 같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와 과거의 나를 지켜야만 하는가, 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가를 고민하는 나는 그저 나를 진정시켜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이 담배였고, 술이었으며, 게임이었다. 그중에는 일도 있다. 그것들이 일이 되었다가 아닌, 정말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직장 생활. 나는 일하는 것도 재미있는, 퇴근을 외치지만 출근을 생각하는 일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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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를 만드는 건 내 선택이다. 선택은 강요받겠고, 분명 조급한 선택을 내리게 될 수 있겠지만, 나는 받을 조언은 받는다. 내 주관이 너무나도 강하여, 어쩌면 융통성이 없는 것이겠지. 원하는 답을 듣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정말 내가 들어야 하는 조언이라면 듣고, 내 주관과 너무 엇나가는 이야기라면 거르기도 하는 사람이니까. 결국, 강요받은 조급한 선택이든, 눈 감고 귀 닫아 내린 결정이든, 그 모든 선택은 내가 내린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에는 내가 휘말려, 내가 골라, 내가 저지른 나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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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지나도 결국 여전할 것이다. 여기 있을 것이다. 나만의 작은 온라인 공간으로 돌아와 이런 글을 써내리겠지. 나는 여유가 있으면 글을 써내리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시간이 썩어나는 군대에서도 그러하였으며, 공부랑은 담을 쌓았기에 새벽 감성이라는 그 말도 안 되는 불안정함을 고등학교 2~3학년 때 쏟아낼 수 있었다. 이 긴 연휴를 맞이하며, 또 마무리하며 나는 또 한 편의 글을 썼다. 나는 내 감정을 토해낼 때 말이 많고, 그것은 글을 쓸 때와 완전히 같은 모습이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건 결국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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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하지는 않겠지만, 다시 이 고민으로 인해 아파하게 되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기 위해 파도에 휩쓸릴 준비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제일 편안함을 느끼는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겠지. 어쩌면 앞으로도 여기에.


'카 더 가든(Car, The Garden)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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