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한 해의.

by 휘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충분하기 위한 과정을 그린다고 해놓고, 웃기게도 부족한 채로 일에 허덕였다. 어쩌겠어 돈은 벌어야지. 고작 3년의 경력, 매년 바빴고, 해마다 바빠졌고, 올해는 또 작년보다도 정신이 없었지만 어쨌든 사고 치지 않고 끝이 났다. 내일모레면 2025년은 또 지나갈 것이고, 나는 올해에도 21년부터 듣기 시작한 가수 정우 님의 종말을 듣고 있을 것이다. '오늘이 마치 세상의 종말 같아. 드리 눕는 너와, 곁에 앉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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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노래 하나에 꽂혀 소설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단편을 창작했다. '海' Sakanaction의 나일론의 실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쓴 글이다. 나는 일본의 문화에 대한 반감이 없고, 그 나라에 대한 반감 역시 없다. 가사와 멜로디를 고르며 노래를 듣는 나는 국내 음악의 주류인 인스턴트 댄스 곡, K POP엔 그다지 관심이 없어 일본의 밴드 노래를 즐겨 듣는다. Rokudenashi의 짧은 커버는 나를 창작으로까지 이끌었다. 적적한 우울감, 청량한 바다보단 심연의 바다에 가까웠던 그 노래에서 분위기를 바꿔볼까. '요루시카-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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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해의 끝을 종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좋아하게 되었다. 이것마저도 음악의 영향이었다. 위에서 소개한. 어쨌든 2025년은 끝이 난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만 25세의 나는 과거가 되어 사라진다. 종말이라는 재해 같은 단어는 이것에 어울리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종말로 내 글을 치장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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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쓴 글들은 많지도 않지만, 나의 나약한 내면이 가진 불안만을 늘어놓았다. 내 가치관을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존중을 노래하며, 평안을 연주하던 나는 색채를 잃었다. 작문에 대한 성장은 정체되어, 구체적으로 감정과 나의 환경을 서술하는 '수입 일본 소설'의 필체를 흉내 내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부족한 인간. 이렇게 자기 비하적인 이야기를 서슴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 맞이하는 2025년이고, 그 해의 종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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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 따위 필요 없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금방 정을 내어주고, 배까지 내어주며,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 주사가 어리광인 것은 아마 그 탓일 거야. 약간의 불안과 공황은 불편한 학급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많은 환경에서 스트레스에 놓인다. 단순히 많기보단, 만원 지하철과 엘리베이터와 같은 폐쇄적인 공간. 호흡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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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불쌍히 여기려 들지 않았다. 중간이 없는 필명 '휘진'이라는 사람은 자기 연민을 버리고, 자기 비하를 주웠다. 버린 것에 미련 두지 않아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긴커녕 쥔 것을 버려, 버린 것을 줍고, 그 채로 나아가고 있다. 이 걸음에도 '어른'이라는 장래는 따라오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지만,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다. 이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나는 이미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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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한 2026년이 찾아오길 소망한다, 사회적인 나는 이미 인정받고 있다. 일은 조금 버려도 괜찮아. 나는 찢겨 흩어진 나를 줍기 위해 뒤로 돌아가려고 한다. 좁은 친구 관계와 인간관계, 무엇이 사람보다 중요했기에 나는 버리고만 왔는가, 유실되었을지도 모르는 내 종말을 뒤 감아 보고 싶어. 시간은 돌이킬 수 없지만, 멈추었다면 다시 흐를 수 있어. 조금의 희망이라도 갖지 않는다면 내 행복은 없어, 말로만 건강해지고, 글로만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은 이제 한계다. 나는 잠시 멈추어 쪼그려 앉을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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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마라톤, 나는 내 번호를 잃었다. 땀 따위 흘린 적이 없는 것만 같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2026년은, 아무 의미 없는 숫자이지만 내가 의미를 부여하기로 정했다. 이건 굳고 밝은 다짐이 아니야.

난 이 종말 앞에서 조금은, 아주 많이 조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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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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