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완연한 봄이 온다고 그러던가, 전혀 아닌 쌀쌀한 이번 절기였다. 이건 어떠한 비유가 아닌 있는 현상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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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법을 기억해 내는 것을 숙제로 낸 것이 2주 전이었다. 결과적으로 일은 잘 풀렸다. 다행히 나를 뒤흔들어놓았던 팀장님의 퇴사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재직하는 것으로 맺음 지어 나는 조금의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퇴사가 충격적으로 느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아마 단순 의지되는 팀장님으로만 그분을 생각했던 것이 아닌, 멘토로 느끼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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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상담도 신청했다. 마음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되었고, 이건 작년 여름부터 지속되어왔던 나의 문제였다. 아니, 어쩌면 청소년 시절부터였을지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우리를 위한 상담이나 심리 치료 지원도 있었다. 내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그동안 상담이나 진료를 미뤄왔던 것도 있고, 거부해 온 것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충동적으로 신청한 상담이지만, 할 필요는 있었다. "꽤 심각한 일 같은데, 덤덤히 말씀하시는 게 마음에 많이 와닿네요."라는 협회 직원의 말에 나는 벌써 조금 위로받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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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것은 여기서부터라고, 시작점을 그리 정하였다. 이렇게까지 휘청거리는 나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나를 보려고 해도 아마 객관적이지 않을 것이다. 도움받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내가 내 이익을 챙기는 건 이기적이란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필요하다. 그런 성인군자였다면, 굳이 사회복지사가 아니었더라도 어딘가에 공익을 실천하고 있었겠지. 나는 그냥 내가 밥 벌어먹고살기에 가장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직업을 골랐을 뿐이다. 사명감을 품고자 노력했고, 품고 싶어 했던 나는 이미 2021년 어딘가에서 죽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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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주는 힘은 대단하다. 일본 문화의 국내 유행 흐름과 별개로, 밴드 음악을 10년 이상 들어왔다. ヨルシカ(요루시카)라는 밴드의 신곡을 기다린 2주였다. 사실, 귀에 꽂히는 트랙이 이미 PV에서 생겨버렸기에. 물떼새. 새싹이 피어날 이 시기와, 꽃이 피어날 이 달에 듣기 좋은 곡이라 느껴졌다. '바람이 나를 부르고 있어.'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고 느낀다. 순풍일지, 모든 것을 뒤엎어버릴 태풍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 등을 밀어주고 있는 이 바람을 조금은 가까이 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