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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홍섭 Nov 26. 2023

요르단 여행

나이숫자만큼 돌아본 62개 지구촌 나라들 16번째 나라


  16. 요르단 (11년 1)


2007년 초 UAE의 두바이에 부임하여 2011년 초까지 4년 동안 중동 땅 두바이에서 40대 후반을 보내면서 몇몇 요르단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들 중에는 순수 요르단 사람들도 있었지만 팔레스타인을 떠나 요르단에 정착한 팔레스타인계 요르단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이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요르단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기왕이면 두바이에 근무하는 동안 근거리 지리적 이점을 살려서 요르단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장 업무가 종료되고 귀국하기 직전인 2011년 1월에 한국의 아내와 아이들을 두바이로 불러서 두바이와 요르단을 10박 11일 동안 여행하였다. 


두바이와 요르단은 같은 중동의 영역이지만 현재의 모습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두바이는 21세기 사막의 어촌에 불과했던 황무지에서 천지개벽을 하여서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하면서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는 물론이고, 유럽으로 가는 항로의 허브 역할을 하는 첨단의 인공 도시로 변모하였지만 요르단은 영국의 시인 존 윌리암 버건이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했듯이 변하지 않은 천연의 아름다운 자연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위대한 자연을 이용하여 BC 7세기경부터 BC 2세기경까지 나테비아인들이 건설한 고대 산악도시 페트라가 있는 요르단은 오히려 과거의 찬란했던 문화 유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자연의 모습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요르단은 지리적으로는 북쪽으로 시리아, 북동쪽으로 이라크, 동쪽과 남쪽에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서쪽으로 이스라엘과 접해 있는데  지도에서 보면 이상하리만큼 국경이 특이하다. 홍해의 일부 바다가 국경에 면하는 대신 사우디아라비아에 양도한 땅에서 많은 유전이 발견되어 운이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숙명과 현실이 되었다. 


요르단 여행은 수도인 암만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조창신 선교사님과 연락이 되어 이분의 도움으로 공항 픽업, 숙박, 단독 차량 및 가이드 제공, 여행안내 등 모든 여행 일체를 일임해 주셨다. 

2011년 1월 7일 금요일 저녁 18시 40분 fly dubai 항공편으로 21시 05분에 암만 공항에 도착해서 조창신 선교사님이 공항 픽업을 해주셨고, 선교사님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첫날을 묵었다. 아직 정식 오픈 전인 게스트하우스 전체를 우리에게 내주셔서 요르단에서 머무는 동안 내 집처럼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암만 게스트 하우스

한국어를 잘하면서 운전 겸 가이드 역할을 해준 이라크 청년은 조창신 선교사님이 이라크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 하는 동안 함께 지내다가 요르단으로 올 때 같이 이주해 왔다고 하였다. 최근 조창신 선교사님의 근황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요르단 교민회를 찾아보니 여전히 요르단에 거주하면서 교민회장직을 맡아서 활동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요르단에서의 둘째 날은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약 2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요르단 대표 여행지 페트라를 다녀왔다.  



페트라는 영화 인디아나존스 최후의 성전에 등장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이 중의 한 곳이며, BBC 선정 세계 50대 명소로 선정될 정도로 잘 알려진 곳이다. BC 3세기경의 아랍 왕조인 나바테 왕조의 수도였던 곳으로 사암 절벽을 깎아 만든 고대 도시이다. 페트라는 주위를 둘러싼 산악 지형 덕에 물을 저장하는 게 용이했고 그 덕분에 사막 지방의 오아시스 도시로서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의 교차점 역할을 맡아 중개무역과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 등으로 번영을 누렸다.


페트라 입구



페트라 알카즈네

페트라 입구는 거대한 자연 절벽으로 이루어진 좁은 협곡이 1km이상 이어진다. 

이처럼 깊이 들어와야 했던 구조였기 때문에 수 세기 동안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입구에서 1km 이상 들어가면 파라오의 보물창고라는 뜻의 ‘알카즈네’라는 건축물이 나오는데 알카즈네는 그리스 건축 양식으로 그리스 신화의 신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페디먼트 형식의 양식이 사용되었다. 


알카즈네


이 건축물의 용도는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지만 대체로 나바테아 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알카즈네 옆쪽으로 계속해서 들어가면 사암으로 된 절벽들에 수없이 많은 구멍들이 파여있는데 이것들은 당시에 묘지로 사용하였던 흔적들이다. 



붉은색에서부터, 푸른 빛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절벽들의 암석의 빛깔은 사막 한 가운데 버려진 듯 홀로 위치한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페트라의 중간 부분에는 사암 절벽의 바위들을 깍아 천연의 계단과 무대를 만든 원형 극장이 나온다. 

원형 극장

요르단 페트라의 와디 아라바 사막 한가운데에는 약 2000년 전에 지어진 로마 시대 원형 극장은  8,5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나바테아인이 이집트와 아라비아의 교차로에 건설한 페트라가 엄청나게 큰 사막의 대상(隊商) 도시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계곡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면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이 나오고, 계단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면 또 다른 건축물인 ‘알데이르’에 도착한다. 

알데이르는 ‘수도원’이란 뜻으로 나바테아인들의 주요 성지 중 한 곳으로 추정되며 정면 높이가 최소한 40m 이상이다. 페트라를 하루 전체 일정으로 둘러보고 암만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암만에서의 2박째를 보냈다. 

알데이르


셋째 날은 암만의 시타델, 모세의 언덕이라 불리는 느보산과 광야, 사해, 예수 세례 터와 요단강 등을 둘러보았다.


암만 성채

요르단의 수도는 암만인데 볼거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침에 먼저 시타델 언덕을 올라가 헤라클레스 신전 등을 둘러보았지만 특별한 감흥은 별로 없었고 대신 암만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암만 시가지와 원형극장


언덕에서 내려다본 암만의 시가 모습은 황토색의 작은 주택들이 낮게 쫙 갈려있는 평온한 시골풍의 모습이었고 도시 전체의 분위기는 그리스 아테네 언덕에서 내려다본 모습과 매우 유사하였다. 

그런 지금의 주택들 사이로 5천 년 역사의 성채나 공공 광장과 같은 로마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고, 시내 동쪽으로 숨은 그림처럼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이 보였다. AD 2세기에 세워진 이 극장은 6,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한때 거대한 묘지로 쓰였던 언덕의 한쪽 면을 파고 들어가 있었다. 


시타델 언덕을 내려와서 사해로 가면서 험준한 구릉과 광야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계곡과 광야를 걸어서 이동해야 했던 옛사람들의 험란한 여정을 상상해 보았다. 


성경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40년 만에 느보산에 도착하여 가나안 땅을 바라본 다음 거기서 120세로 죽었다고 한다. 

느보산의 시야가 봉우리는 사해와 그 서북쪽에 있는 유대교 수도원과 쿰란 동굴 오아시스 도시 여리고와 요단강과 유대 광야 그리고 예루살렘 동쪽 올리브 산꼭대기 등을 훤히 바라다볼 수 있다. 느보산 입구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느보산을 방문했을 때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화합을 기원하면서 “God is one, Father of all Above all”이라고 새겨진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느보산 시야가 봉우리에 있는 모세 기념 비


느보산 고원에서 내려다보이는 구릉의 모습과 그 아래 펼쳐진 척박한 광야의 모습은 말 그대로 광야라는 단어의 의미를 실감케 하였다.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120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모세를 생각하며 바라다본 이스라엘 가나안 땅과 사해가 더 특별하게 보였다. 

이곳에는 모세 기념 교회가 서 있는데 4세기 비잔틴 시대에 지어졌다고 한다. 바닥에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태리 조각가가 구리철사로 만든 작품으로 모세의 상징물인 놋뱀도 광야를 바라보며 우뚝 서 있었다. 성경에서 놋뱀은 모세가 시나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느보산 놋뱀 조형물


사해 근처의 호텔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재상이와 함께 사해 바다로 들어가서 사진에서 본 자세로 인증사진을 찍었다. 

바닷물에 둥둥뜨는 것은 직접 체험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해


다행이 1월인데도 수온이 아주 낮지는 않았지만 안정된 자세로 누워있는 것은 나름 요령이 필요해 보였다. 

암튼 사해에서의 의미있는 인생샷 하나를 남길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예수 세례터와 이스라엘과 마주한 요단강을 찾아가 보았다. 

예수 세례터


예수 세례터


요단강 (강 건너편이 이스라엘)
요단강 옆 세례를 받는 아이와 가족들 모습


요단강 입구


요르단에서의 둘째 날 페트라와 셋째 날 암만 시타델, 느보산, 사해, 요단강 등을 둘러보는 짧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두바이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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