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숫자만큼 돌아본 지구촌 나라들 31번째 나라
나이 숫자만큼 돌아본 지구촌 나라들 31. 남아공 (14년 11월)
사우디아리비아 리야드 K.A.F.D 타다울 타워에서 삼성물산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면서
만 20년 근속 다음 해에 주어지는 장기근속 포상으로 금 10돈과 9박 10일간의 위로 휴가를 받아서 남아공 케이프타운, 보츠와나 초배 국립 공원,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등 아프리카 3개국을 자유여행으로 다녀왔다.
남아프리카는 남미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다녀오려면 장거리 비행의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먼 거리에 있다. 직항이 없어서 두바이와 요하네스버그를 경유하는 경우, 한국에서 두바이까지 9시간 30분, 두바이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8시간, 그리고 요하네스버그에서 케이프타운까지 2시간 등의 비행시간과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이동하는 대만 최소 하루 이상이 걸린다.
나의 경우는 리야드에서 출발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해서 리야드에서 두바이를 경유해서 케이프타운으로 날아갔다.
이번 아프리카 여행 3개국은 케냐나 탄자니아 등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처럼 입국 시에 황열병 주사 접종 증명서 등을 요구하지 않아서 별다른 준비 없이 쉽게 입국할 수 있었다.
케이프타운은 케이프주의 수도이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의회가 있는 입법부 수도이다. 인도양과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케이프반도 북단에 위치하며,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시드니, 샌프란시스코 등과 비교되는 항구 도시이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으로 유럽인들의 희망 관광 지역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해마다 선정될 만큼 세계적인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케이프타운은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 무역의 전진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한 도시이다. 유럽을 출발한 배들은 케이프타운에서 물자를 보충하고 장거리 항해의 피로도 회복하면서 항해를 계속했다. 건설도 이용도 대부분 유럽인이었으니 아프리카에 있는 도시임에도 유럽보다 더 유럽 같은 도시가 되었다. 케이프타운은 흑인 인구가 전체의 80%가 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일하게 흑인보다 백인이 많은 곳이다.
케이프타운은 황홀한 야경뿐만 아니라 아침이 되면 산책하기 좋은 온화한 유럽의 한 도시로 변한다. 개척 시대부터 세워진 건물들이 잘 정리된 거리와 고층빌딩들의 비즈니스 구역의 활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담한 단층 건물들이 푸른 녹음과 어울려 지중해 유럽의 한 곳에 온 듯한 인상을 준다. 지중해 기후와 비슷하고 하얀색 집들이 많은 케이프타운은 전 세계의 부호들이 케이프타운에 별장을 마련하고 일 년에 단 며칠이라도 여유로운 휴가를 즐기기 위해 찾는 휴양도시이다.
남아공의 케이프 타운여행은 한인 민박집인 엠마뉴엘 하우스에서 묵으면서, 엠마뉴엘 하우스 박 사장님이 직접 운전과 투어 가이드를 하면서 케이프타운과 희망봉 등 케이프타운 주변까지 포함하는 여행을 하였다.
케이프타운에 도착해서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를 찾아가 보았다. 케이프타운은 유럽의 식민지 지배를 오래 받다 보니 와이너리가 많이 발달 되어 있었고, 와인을 숙성하기 위해 필요한 오크통을 직접 만들기 위해 참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는데, 교민들은 도토리를 따다가 묵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고 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을 세운 네델란드인 얀반 리벡이 남아공에서 1659년부터 처음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케이프타운 주요 와인 산지는 콘스탄시아 Contantia, 스텔렌보시 Stelenbosch, 팔 Paarl, 프렌치혹 Franschhoek 등이 있다.
포도 품종으로는 남아공에서 개량된 Pinotage, 화이트 와인의 주 품종인 chenin Blanc, Chardonnay, Sauvignon Blac, Riesling, 레드와인의 주 품종인 Merlot, Cabernet Sauvignon, Shiraz. Syrah, Cabernet Franc, Pinot noir 등의 다양하게 블렌딩 된 와인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남아공의 유명 와이너리들은 보르도, 부르고뉴, 토스카나, 나파벨리의 유명 와이너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케이프타운에서 내가 찾아간 와이너리는 그루트 콘스탄시아( Groot Constantia)였다. 이 와이너리는 남아공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의 하나로 1685년 네델란드의 동인도회사 남아공 통치자로 임면된 Simon del stel이 설립하였다. 18세기 763ha 달하던 포도밭은 분할되어 현재는 7개의 도멘에서 약 500ha 포도밭을 운영하고 있다. 네덜란드어인 Groot는 영어로 Great란 의미로, 거대한, 위대한, 광대한 등의 뜻을 갖는다. 테이블마운틴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비교적 서늘한 포도 품종 소비농 블랑에 좋은 조건이다.
이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들은 엄격하고 감동적인 품질관리로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프랑스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던 와인으로 Groot Constatia를 ’Grand Costantia’로 번역된 라벨을 붙여 나폴레옹이 죽었을 때까지 공급하였다고 한다.
일관성과 꾸준함의 의미를 지닌 라틴어 'Constantia'로 이름을 지었을 정도인 Groot constantia는 현재까지도 설립 당시의 취지를 완벽하게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이 Groot Cnstatia 와이너리에는 박물관, 레스토랑, 셀러, 와인 시음 쇼룸, 와인 숍 등을 겸비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이런 건물 바로 앞에 와이너리 소유의 광활한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와이너리 방문후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케이프타운의 배경 무대처럼 버티고 서 있는 테이블 모양의 테이블 마운틴을 올라 트레킹을 하였다. 케이프타운의 랜드마크인 테이블마운틴은 해발고도 1,085m정상은 고원같이 평평해서 마치 식탁처럼 보인다.
케이프타운에서의 첫날은 와이너리, 테이블 마운틴, 시그널 힐, 식물원 등을 둘러보았다.
둘째 날 오전에는 근교에 있는 골프장에서 케이프타운 교민들과 골프 라운딩을 하였고, 오후에는 사자봉을 트레킹하였다.
전혀 예상 밖의 일정이었지만, 민박집 박 사장님의 뜻밖의 제안으로 이곳 교민들과 케이프타운에서의 스페셜 라운딩을 하였다. 케이프타운 교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백인촌 인근에 있는 근린 골프장에서 이곳 교민들은 정기적인 골프 모임을 하면서 교민들의 친분을 나누고 있다고 하였다.
케이프타운 교민들과의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런 라운딩이라서 이곳 클럽하우스에 있는 골프 클럽과 신발 등을 빌려서 얼떨결에 조인한 라운딩이었지만 전반, 후반 두 번의 버디를 해서 교민들에게 칭찬을 받는 인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사자봉(라이온스 헤드)은 금광이 있던 곳으로 패러글라이딩과 일몰 조망 포인트로 유명하다. 사자봉까지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하이킹으로 다녀와야 한다. 사자봉 주차장에서 원점회귀를 해도 좋지만 케이프타운 3대 하이킹 코스 중의 하나인 시그널 힐부터 라이사자봉까지 코스는 케이프타운의 도심 풍경과 울퉁불퉁한 해안을 좀 더 가까이서 드라마틱하게 즐길 수 있다.
셋째 날에는 캠스 베이, 물개섬, 핫 베이, 챔프만 피크스, 케이프 포인트, 펭귄 비치를 둘러보았다.
넷째 날 오전에 케이프타운을 출발해서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짐바브웨의 빅토리어 폴로 날아갔다.
한인 민박집인 엠마뉴엘 하우스의 박사장님은 남아공 월드컵 관련해서 케이프타운에 출장을 왔다가, 케이프타운이 너무 좋아서 아예 정착을 해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케이프타운에 있는 동안에 낮에는 박 사장님의 차로 일일 투어를 계속하였고, 저녁에는 교민들이 찾아와서 함께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특히 일산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분의 아들이 한국 학교에서 일진 비슷한 곳에 빠져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자 아예 엄마와 아이가 이곳 케이프타운으로 와서 공부에 전념해서 케이프타운 대학 회계학과 졸업반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그들 모자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아공은 영어를 가장 Native에 가깝게 사용하는 몇 나라 중의 하나라서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멀기는 하지만 비교적 물가가 저렴해서 한국의 열성파 학부모들의 관심 지역이다 보니 자녀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많이 나와 있다고도 했다.
케이프타운 한인 교민들은 대부분 백인 촌에서 쾌적하고 여유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엠마뉴엘 하우스 민박집도 백인촌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대지가 500평정도 되고, 집에 넓은 잔디밭이 있고, 뒷뜰에는 텃밭을 가꾸면서 야채를 심어서 식용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 집을 구입할 때 가격도 5억 이내였다고 한다.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지고 지구 반대편에까지 와서 살고 있는 교민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매우 특별한 기억을 선사해 주었다.
케이프타운 셋째 날에는 지리적으로 상징성을 갖는 희망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다. 아프리카 최남단이 희망봉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최남단은 아니다.
아프리카 실제의 최남단은 희망봉에서 160km 지점의 아굴라스 곶이다. 1487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서해안 탐험을 하러 나섰다가 거센 바람과 폭풍으로 귀항하다가 닻을 내린 곳이 바로 희망봉이다. 그는 이곳을 폭풍의 곶이라 불렀다.
9년 뒤 또 다른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가 폭풍의 곶을 무사히 통과하고 유럽인 최초로 인도에 도착하자 포르투갈 왕 주앙 2세가 희망의 곶 (Cape of Hope)으로 바꾸었다. 그들은 모두 이곳이 아프리카 최남단이라 믿었다.
희망봉은 봉우리라고 하기엔 조금 무색한 돌 언덕이다. 희망봉이라는 표지판은 봉우리가 아닌 해안 평지에 있다. 내가 희망봉을 찾은 날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15세기 처음 이곳을 발견한 포르투갈 사람들의 탐험 정신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