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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창덕궁 후원) 답사기

점심시간 소확행

by 박홍섭

2025년 7월 1일, 화요일

요즈음 점심시간에 광화문 사무실에서 도보로 둘러볼 수 있는 궁궐 답사를 이어가고 있다.


광화문 근처의 3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은 직장인들을 위해 10회 이용권을 판매하고 있어서 이들 이용권을 구입했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점심을 생략하고 미리 예약해 두었던 창덕궁 후원(비원)을 둘러 보았다.


창덕궁을 입장해야 비원이나 창경궁을 둘러 볼 수 있다.


경복궁은 바로 사무실 근처라서 걸어서 가지만, 덕수궁이나 창덕궁은 오고 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사무실 앞에서 따릉이를 타고 창덕궁이나 덕수궁 앞까지 갔다가 올 때도 따릉이로 돌아오면 된다.


서울의 따릉이 시스템, 그리고 광화문 근처에 있는 이런 궁궐들은 어찌 보면 직장생활 외의 보너스들이다.


창덕궁은 점심시간 10회 이용권(5,000원)을 구입했기 때문에 10회 이용권을 이용했고, 비원은 별도의 입장료(1회 5,000원)를 지불하고 입장했다.


창덕궁 비원은 조선 왕실의 정원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정제된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1시간이 소요된다고 되어 있지만 느긋하게 둘러보았는데 40분 정도면 마음껏 둘러볼 수 있었다.


본래 '비원(祕苑)'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에 민간에서 붙인 명칭으로, 궁중에서는 단순히 '후원(後苑)' 또는 '북원(北苑)'이라 불렸다.

이 정원은 1405년 태종이 창덕궁을 조성하면서 함께 만들어졌으며, 왕실의 은밀한 휴식처이자 교양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서울 중심에 있으면서도, 내부로 들어서면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듯한 고요함과 깊은 숲의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궁궐 건축과 달리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자연의 지형과 숲, 물길을 그대로 살려 배치한 점이 이 정원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인공을 자연 속에 감추고 자연 속에 인공을 섞어 넣은 듯한 조경 방식은 중국이나 일본의 궁정 정원과 구별되는 한국 고유의 미의식을 보여준다.


비원의 중심에는 여러 개의 연못과 정자, 누각, 숲길, 계류 등이 흩어져 있으며, 그 모든 구성은 특정한 구조나 대칭 없이 지형에 따라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표적인 장소로는 부용지와 부용정이 있는데,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용지는 인조 때에 조성되었으며, 그 북쪽에 자리한 부용정은 왕이 시를 읊고 사색하던 정자다.


그 주변에는 왕의 서재로 활용되었던 주합루, 서향각, 이로당 등이 함께 모여 작은 서재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왕이 유학자들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짓던 조선적 교양의 장소였다.


이어지는 애련지와 애련정은 ‘연꽃을 사랑한다’는 이름처럼 소박하면서도 정취가 넘치는 풍경을 자아내며, 자연의 정적인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고 있다. 특히 애련정은 주변 나무와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존덕정은 연못 중앙의 정자가 네모난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인조 대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며, ‘덕을 존중한다’는 유교적 상징을 지닌다.


이 정자는 정면보다 측면에서 보았을 때 더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특이한 구성을 보여주며, 인공적인 건축이 자연의 일부가 된 예를 잘 보여준다.


연경당은 다른 후원 건물들과는 다르게 실제 생활공간의 기능이 강한 곳으로, 순조가 아버지 정조를 기리기 위해 지었으며, 당시 왕세자의 별당으로도 사용되었다.


외형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내부에는 전통 건축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으며, 실제 조선 후기 왕실의 일상을 짐작케 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 외에도 옥류천은 정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물길로, 소요암이라는 바위에는 ‘옥류천’이라 새겨진 글자가 흐르는 물길과 함께 신선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며, 물 위에 배치된 이수정, 태극정 등의 정자는 선계(仙界)를 상징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원의 모든 구성은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을 해치지 않으며, 인간의 건축이 자연 속에 숨어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 유교 사회에서 왕의 권위가 강했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은 화려함보다는 절제와 여백, 사색과 고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유교적 인간상과 도가적 자연관이 함께 녹아 있는 조선 정원문화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창덕궁 비원은 단지 휴식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논의, 문학적 영감, 철학적 사유가 이루어진 궁중 교양의 장이었다. 때문에 왕들은 이곳에서 신하들과 시문을 나누거나 사서삼경을 강론하며 정신적인 수련의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점에서 비원은 단순한 조경 공간이 아닌, 조선의 지성적 문화를 담아낸 살아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오늘은 새벽에 비가 약간 뿌려서인지 낮에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기온도 꽤나 높은 편이라서 땀을 많이 흘렸지만, 사무실로 돌아와 찬물로 세수를 하니 깨온해졌다.


점심을 스킾하고도 마음의 양식만으로도 배가 부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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