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7월 8일
창경궁 답사기
어렸을적 부모님 따라서 창경원에 다녀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창경원은 커다란 식물원과 동물원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오늘 점심시간에 창덕궁과 붙어있는 창경궁을 다녀왔다. 광화문 사무실에 근무하기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서울의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비원, 창경궁까지를 모두 둘러 보았다.
4대 궁궐 모두 10회 입장권을 끊었기 때문에, 오늘 창경궁은 처음이지만 나머지 궁궐들은 이미 여러 차례 둘러보았다. 또한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괃은 무료입장이라서 자주 들렀다.
창경궁은 창덕궁 안에 입구가 있어서 창덕궁 입장 요금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서 비원처럼 또다시 입장료를 내야 한다. 다만 비원은 철저히 인원과 입장 시간이 제한되어 있지만 창경궁은 그런 제한은 없다.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의 입장료는 3천원, 비원 5천원, 창경궁 1천원, 국립 민속박물관과 국립 고궁박물관은 심지어 무료이다. 외국인도 똑같이 받는다.
일본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인도 타지마할의 경우 내국인은 50루피이지만 외국인은 1,100루피로 22배를 더 비싸게 받는다.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계 top 10의 선진국이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외국인에 대해서도 무료 입장이나 1천원 입장료는 너무 저렴한게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
창경궁은 원래 조선 성종이 세 왕대비를 위해 1483년에 건립한 궁궐로, 창덕궁과 함께 동궐(東闕)을 이루며 왕과 왕비, 대비의 일상 거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경복궁과 창덕욱, 덕수둥을 모주 두 번 이상 자녀온 터라 그런지 창경궁은 자연 지형을 살린 실용적이고 단정한 공간 배치가 오히려 조화미를 잘 보여주고 있었고, 전각의 수가 많지 않고 규모가 아담한 느낌이 들었다.
공간의 구조와 배치도 경복궁처럼 평지에 일직선의 축을 이루도록 구획된 것과 다르게, 높고 낮은 지세를 거스르지 않고 언덕과 평지를 따라가며 터를 잡고, 필요한 전각을 지어서 그런지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또한 조선시대 다른 궁궐과 주요 전각들이 남향으로 지어진 것과 달리 창경궁의 일부 전각들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점이 특이했다.
창경궁의 경우 정문인 홍화문과 정전인 명정전은 동쪽을 향하고, 관청 건물인 궐내각사와 내전의 주요 전각들은 남쪽을 향해 있다.
창경궁은 어렸을 적에 창경원으로 기억에 남아 있듯이, 일제강점기인 1909년, 조선총독부가 이 궁궐을 ‘창경원(昌慶苑)’으로 개칭하고 그 내부에 동물원, 식물원, 유리온실 등을 설치함으로써 조선 왕실의 위상을 철저히 훼손하였다.
이는 일본이 조선 왕실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상징적 조치였고, 이런 상황은 1980년대 초까지도 시민들이 가족 단위로 즐겨 찾는 유원지로서의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유지되었고, 아이들의 소풍 장소이자 도시인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당시 창경원에는 원숭이, 사자, 코끼리 같은 동물이 있었고, 온실 속에는 이국적인 식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궁의 전각은 대부분 훼손되거나 방치되어 조선 왕궁으로서의 정체성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1983년을 기점으로 정부와 문화재청은 궁궐 복원 사업을 본격화하여 동물원과 식물원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전시키고, 훼손된 전각과 공간을 하나씩 복원해 나가기 시작하고, 동시에 이름도 ‘창경궁(昌慶宮)’으로 다시 환원되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까지 이어져온 역사 왜곡의 흔적을 지우고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후 창경궁은 명정전, 경춘전, 춘당지 등 주요 건물을 중심으로 왕실 궁궐로서의 모습을 되찾아갔고, 지금은 창덕궁과 함께 역사 문화 탐방의 중심지로 자 리잡아 한복 체험, 야간 개장, 궁궐 해설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해외에서 23년 동안 살면서, 국내의 전통 공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살았다. 그러나 최근 서울의 궁궐과 전통적인 공간들을 다시 돌아보며,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의 깊은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하나하나 새롭게 깨닫고 있다.
창덕궁의 후원인 비원과 창경궁, 경복궁, 덕수궁 등 서울의 궁궐들은 단순히 역사적 유산을 넘어서, 깊은 정서와 고요한 휴식을 제공한다는 사실에 매일 새롭게 감동을 받고 있다.
이들 궁궐이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지, 그 고요한 공간들이 일상에 지친 마음에 얼마나 큰 평화와 여유를 선사하는지를 깊이 느끼고 있다.
경복궁의 넓은 마당, 덕수궁의 섬세한 서양식 건축과 고즈넉한 정원, 창덕궁의 비원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런 역사적인 공간들이 도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은 서울이 가진 독특한 매력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해 준다.
특히, 주로 한강 이남에서 살아온 탓에 강북의 이런 멋진 전통 공간을 이제서야 체험하게 된 감흥이 더욱 크고 깊다. 강북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궁궐들과 전통적인 공간들이 주는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울림을 주고 있으며, 그 소중함을 매일 새록새록 깨닫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과 같은 전통적인 한국의 멋을 간직한 곳들이 근처에 있어, 현대적인 도시와 역사적인 공간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정말 놀랍고, 외국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공간임을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
그동안 이런 공간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는 그 소중함을 깊이 느끼며 감사하고 있다. 서울의 궁궐과 전통적 공간들이 도심 속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은 서울이 가진 역사적 깊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고요하고 아름다운 휴식처들이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깊이 있는 휴식을 선사한다는 것을, 매일매일 체감하며 감사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공간에서 느껴지는 자부심과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이제는 그것이 외국인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서울의 전통과 역사를 품은 공공의 공간은 과거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 현대인의 삶에 큰 가치를 더하는 장소로,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느껴지며 그 존재 자체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