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7월 5일, 토요일
# 청계천 소고(小考)
매일 아침,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광화문 사무실로 향하지만, 일부러 을지로4가역에서 내려 청계천을 따라 약 3km 걷는 길을 택한다.
굳이 을지로 4가 역을 택하는 이유는, 5호선 지하철역에서 내려 곧바로 청계천으로 연결되는 역이기 때문이고, 이곳에서 광화문 사무실까지 3km는 출근 전 걷기에 적당한 거리이다.
빠르고 효율적인 이동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가 지나온 시간과 공간을 천천히 되짚어 보는 이 여정 속에 스스로를 겹쳐 볼 수 있다.
건설 엔지니어로서, 직업병처럼 구조물이나 도로 위를 지나칠 때마다 그 아래 어떤 인프라가 놓였고, 어떤 도시 철학이 반영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지금처럼 도심 속 산책로로서 기능하기 이전의 청계천은 복개되어 가려져 있었다가 언제부턴가 다시 열리고 살아난 하천이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매일 아침 걷는 이 길이 어떻게 새롭게 재구성되었는지를 알고 싶어지기 시작했고, 시간 날 때마다 관련 문헌과 기술자료들을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다.
그래서 아침 산책의 감상은 덤이고, 더불어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세계에까지 널리 알려진 청계천의 현재 위상을 정리해 보는 중이다.
을지로4가역 4번 출구로 나서서 약 100m 정도를 직진하면 곧장 청계천 물길이 펼쳐진다. 물은 고요하고 맑으며, 제 방향을 알고 흐르는 듯 서에서 동으로 중랑천을 향해 흐른다.
매일 아침 청계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한 몸에 지닌 산책로 위를 걷는 느낌이 든다. 또한 매일 마주치는 청계천을 달리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어깨가 우쭐해지기도 한다.
청계천의 근대 풍경에 대해서는 1930년대 박태원이 쓴 소설 <천변풍경>이 있다.
인도에 근무하면서 최명희 선생의 10권짜리 대하소설 <혼불>에서 1930년대 남원의 거멍굴 사람들의 풍경과 인도 뭄바이 슬럼가의 카오스같은 풍경을 오버랩해 보곤 하였던 것처럼,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1930년대 청계천 주변을 배경으로 삼아, 청계천 곁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변두리의 이발사, 점원, 작부, 엿장수, 가난한 학생들, 그리고 희망과 체념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박태원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식민지 조선이라는 시대와 공간을 섬세하게 기록했다.
그의 시선은 어느 한 주인공에 고정되지 않고, 청계천이라는 공간을 따라 시선을 흐르게 하며, 각자의 생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2025년의 청계천 길을 걷는 동안, 마치 지난 1세기 동안의 인물들 뒤를 따르듯, 과거의 풍경을 현재 속에서 조용히 밟아가고 있는 셈이다.
『천변풍경』이 발표된 1936년, 청계천은 아직 자연 하천이었다. 그러나 이미 오염이 시작되었고, 하천 주변은 도시 빈민과 서민들의 삶이 밀집된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은 소설 속 상상의 풍경이지만, 인도에서 6년 반 동안 살면서 실제 눈으로 매일 체험했던 그런 모습들일 것이다.
이후 해방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가 겹치며 청계천 일대는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으로 변해갔다.
문헌자료를 찾아보니, 1958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었고, 1976년에는 완전히 덮였다. 이 위에 1968년부터는 청계 고가도로가 놓이면서, 청계천은 도시 지도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하천은 도시의 뒤안길로 밀려났고, 콘크리트 구조물과 매연이 그 위를 점령했다. 그러나 이 복개와 고가도로는 단지 도시 공간의 재배치가 아니라, 근대화의 속도에 쫓긴 도시의 선택이자 압축 성장의 상징으로 보인다.
한때 서울의 교통을 지탱했던 이 구조물들이 시간이 흐르며, 또다시 도시의 노후와 단절로 깨닫기 시작했고,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서 이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2003년,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5.8km의 물길을 다시 열기 위한 이 작업은 기술적 난이도와 함께, 도시 정책, 역사, 시민의 정서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사업이었다.
복원 과정에서는 복개 구조물의 안정적 철거, 인공 수로 설계, 수질 관리, 하천 생태계 조성, 시민 접근성 확보 등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청계천 복원 작업 보고서를 보고 알게 되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이 모든 것을 구현하는 일은 단순한 공사가 아닌, 도시 철학의 재편이었다. 복원 이후, 청계천은 생태 하천이자 역사 교육 공간, 시민 문화 공간, 도시 재생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청계천에 대한 문헌이나 뉴스를 찾아보니,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는 오히려 해외에서 더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 유명 사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05년 미국 환경계획학회(APA)는 청계천 복원을 세계적 도시환경 개선 사례로 선정했고, UN 해비타트도 도시 생태계 회복의 대표적 모델로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후 일본, 싱가포르, 유럽의 여러 도시가 청계천을 벤치마킹했고, CNN, BBC, 르몽드 등 해외 언론에서도 ‘도심 속 기적’, ‘콘크리트 도시의 생명 회복’으로 소개했다.
특히 파리, 도쿄, 시드니 등은 자국 하천 복원 논의에서 청계천을 중요한 참고 사례로 인용하고 있고, 서울이 이 복원을 통해 ‘환경 중심의 도시 계획’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청계천은 이제 서울 시민뿐 아니라, 세계 도시계획자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자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의 청계천은 단지 한때의 하천을 되돌린 것이 아니다. 조선의 개천에서, 식민지 시대 서민의 삶터로, 산업화기의 뒷골목에서, 복원의 도시 상징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층위를 간직한 공간이다.
매일 아침 청계천을 걷는 동안 삼일교를 지나, 광통교와 장통교, 수표교를 거쳐 광화문까지의 짧은 구간 안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포개져 있다. 정조의 능행차가 지나던 광통교에는 그 시절을 기리는 부조가 남아 있고, 수표교 아래 물고기들은 다시 도심 속 생태계를 이루며 유영하고 있다.
지금의 청계천을 아침마다 걸으며 1930년대 박태원이 보았을 그 당시의 천변 풍경을 오버랩해 보면서 이처럼 급속하게 달라진 문명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곤 본다.
도시의 시간은 곧 사람의 시간이며, 하천은 그것을 흐르는 선이다.
청계천은 과거와 미래, 기술과 감성이 겹쳐진 도시의 살아 있는 풍경이다. 청계천을 따라 걷는 이 아침의 30분은 단순한 출근길이 아니라, 도시가 선택하고 회복해 온 구조를 천천히 읽어내는 시간이다.
<천변풍경> 속 인물들의 삶이 물에 비치던 1930년대부터, 콘크리트 아래로 묻혀있던 산업화의 시절을 지나, 지금처럼 다시 햇살을 받으며 흐르는 청계천에 이르기까지 서울은 그렇게 물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다.
오늘도 걷는 이의 감정은 물결처럼 잔잔하게 출렁이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숨결은 청계천 물 위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