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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이발관

by 박홍섭

광화문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난 뒤부터,

사무실이 있는 건물 뒤편 골목의

<남원 이발관>에서 이발을 하고 있다.


종로 도심의 빌딩 숲 한 구석에

낮은 단층 건물 속에 자리한 이곳은,

간판의 글씨부터 정감이 간다.


마치 작은 건물 전체가

영화의 세트장처럼 느껴진다.

인기 개그맨의 모친이 세탁소로 운영했다던

그 점포를 사용하고 있는 이발관은

아침 6시 45분에 문을 여는 것도 특이하다.


오늘은 출근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담았다.


이 이발관 사장님은

1970년대에 남원에서 상경해서

종로 시립극장 주변을 거쳐 이곳까지,

이미 50년 넘게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다.


띠를 물어보니 돼지띠라고 해서

1961년생 소띠보다 두 살 많은 줄 알았더니

무려 14살이 많은 75세인데도

얼른 보기에는 60대 후반처럼 보인다.


1970년대부터 이 거리를 지켜온

그의 손놀림에는 세월이 묻어 있고,

그 세월 속에는 종로의 수많은

얼굴들이 포개져 있다.


고정으로 들르는 손님을 물어보니,

이한동 국회의원,

차인태 아나운서.. 등을 말한다.


이발을 하는 동안 거울 속에는

양복 주머니에 회사명함을 넣고 들어와

담배 냄새를 풍기던 70년대 회사원,

머리 윗부분만 살짝 올려 달라던 80년대 청년,

휴대폰 벨소리를 꺼두고

잡지를 넘기던 90년대 직장인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스쳐 지나가면서,

발끝 아래 바닥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머리카락이

층층이 쌓여 있는 듯한 느낌이다.


최근에 읽었던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 속

이발소 풍경이 떠오른다.


박태원의 『천변풍경』 속 이발소 장면은

청개천 개천가의 소란과 비누 냄새,

가위질 소리로 가득한 작은 공간을 비춘다.


“귀여운 소년 재봉이는 창가에 서서

개천 속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거울 앞 민 주사는 쭈글쭈글 늙어 가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다가도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

흐뭇해한다.


그 창 너머로 빨래터의 아낙네,

포목전 앞의 중절모 신사,

카페 여급의 발걸음이 오가며,

이발소는 단순한 미용 공간이 아니라

동네의 모든 이야기가

오고 가는 창구가 된다.”


그러나 오늘의 청계천에는

그러한 생활의 소리와 냄새 대신,

물 흐르는 소리와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발자국이 감각을 채우고,

개천은 빨래터와 장터의 현장이 아니라,

잘 관리되고 정비된 여가와

생태 공간으로 변모했다.


1930년대의 천변 이발소 창이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던 ‘마을의 눈’으로,

재봉이의 호기심과 민 주사의 한숨은

도시의 시간 속에 박제된 채

잔향처럼 남아 있다.


현실의 <남원 이발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1930년대 청개천 개울물 대신

종로의 차량 소리와

긴박을 알리는 앰뷸런스의 다급한 울림소리가,

아이들의 웃음 대신 골목을 스쳐 간다.


전차가 버스로, 자가용으로,

그리고 따릉이와 킥보드로 바뀌는 동안,

남원 이발관의 의자와 거울은 변하지 않았다.


박태원이 기록한 하천 변의 물결처럼,

이발관의 가위질은 도심 속에서

변함없이 이어져 온 물소리다.


이발을 마치고 골목을 빠져나오면

빌딩 숲이 다시 현재의 속도로 몰려오지만,

귀속에는 여전히 ‘촤각, 촤각’ 가위질 소리가

아른거린다.


문화가 바뀌고 거리가 달라져도,

그 소리는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머리카락이 자라는 한,

남원 이발관 의자에는

늘 누군가가 앉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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