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직장인의 종로 산책 일기
2025년 2월 26일, 수요일
# 천변 풍경
매일 아침,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광화문역에 내리면 곧바로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지만,
두 정거장 먼저인 을지로4가역에서 내려 청계천으로 향한다.
을지로4가역 4번 출구의 에스컬레이터를 빠져나오면
포장마차처럼 생긴 작은 점포에서 늘 아주머니는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고,
창경궁 앞까지 뻗어있는 창경궁로를 따라 늘어선 공구 상가들이 아침 문을 열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약 80m를 걸어가면 청계천 배오개다리가 나온다.
아침 햇살이 창경궁로의 건물 사이로 스며드는 시간,
도시의 소음과 먼지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조용히 깔려 있지만,
배오개다리 밑으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청계천으로 내려가면
물길 위로 반짝이는 햇살이 발걸음을 안내한다.
청계천 산책길은 청계천이 시작되는 광화문 쪽 청계광장을 향해 왼쪽과 오른쪽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왼쪽은 폭 2~3m의 우레탄 포장길이고, 오른쪽은 3~4m 폭의 콘크리트 포장 위에 도색만 한 산책로이다.
사람들은 각자 취향에 맞게 양쪽의 산책로를 선택해 걷거나 달리기를 한다.
이른 아침 청계천 산책로에서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주로 조깅을 하고,
나이 든 어른들은 주로 아침 산책 겸 걷기를 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이 산책로를 이용해서 출근하는 직장인들도 종종 보인다.
매일 아침 청계천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마치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한 몸에 지닌 산책로 위를 지나는 느낌이 든다.
또한 매일 마주치는 청계천을 달리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어깨가 우쭐해지기도 한다.
청계천의 근대 풍경에 대해서는
1930년대 박태원이 쓴 소설 ‘천변 풍경’에 잘 묘사되어 있어서
그 시절의 청계천 변 생활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인도에 근무하는 동안 최명희 선생의 10권짜리 대하소설 ‘혼불’을 읽으면서
1930년대 남원의 상민 마을인 거멍굴 사람들의 풍경과
인도 뭄바이 슬럼가의 카오스같은 풍경을 오버랩해 보곤 하였던 것처럼,
박태원의 ‘천변 풍경’은 1930년대 청계천 주변을 배경으로 삼아,
청계천 곁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변두리의 이발사, 점원, 작부, 엿장수, 가난한 학생들,
그리고 희망과 체념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박태원은 식민지 조선이라는 시대와 공간을 섬세하게 기록했다.
그의 시선은 어느 한 주인공에 고정되지 않고,
청계천이라는 공간을 따라 시선을 흐르게 하며, 각자의 생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2025년의 청계천 길을 걷는 동안, 마치 지난 1세기 동안의 인물들 뒤를 따르듯,
과거의 풍경을 현재 속에서 조용히 밟아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천변 풍경’이 발표된 1930년대, 청계천은 아직 자연 하천이었다.
그러나 이미 오염이 시작되었고, 하천 주변은 도시 빈민과 서민들의 삶이 밀집된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은 소설 속 상상의 풍경이지만,
인도에서 6년 반 동안 살면서 실제 눈으로 매일 체험했던 그런 모습들일 것이다.
이후 해방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가 겹치며 청계천 일대는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으로 변해갔다.
1958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었고, 1976년에는 완전히 덮였다.
이 위에 1968년부터는 청계 고가도로가 놓이면서,
청계천은 도시 지도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하천은 도시의 뒤안길로 밀려났고, 콘크리트 구조물과 매연이 그 위를 점령했다.
그러나 이 복개와 고가도로는 단지 도시 공간의 재배치가 아니라,
근대화의 속도에 쫓긴 도시의 선택이자 압축 성장의 상징으로 보였다.
한때 서울의 교통을 지탱했던 이 구조물들이 시간이 흐르며,
또다시 도시의 노후와 단절로 깨닫기 시작했고,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서 이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2003년,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5.8km의 물길을 다시 열기 위한 이 작업은 기술적 난이도와 함께,
도시 정책, 역사, 시민의 정서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사업이었다.
복원 과정에서는 복개 구조물의 안정적 철거, 인공 수로 설계, 수질 관리,
하천 생태계 조성, 시민 접근성 확보 등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청계천 복원 작업 보고서를 보고 알게 되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이 모든 것을 구현하는 일은 단순한 공사가 아닌,
도시 철학의 재편이었다.
복원 이후, 청계천은 생태 하천이자 역사 교육 공간,
시민 문화 공간, 도시 재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는 오히려 해외에서 더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2005년 미국 환경계획학회는
청계천 복원을 세계적 도시환경 개선 사례로 선정했고,
UN 해비타트도 도시 생태계 회복의 대표적 모델로 높이 평가했다.
이후 일본, 싱가포르, 유럽의 여러 도시가 청계천을 벤치마킹했고,
CNN, BBC, 르몽드 등 해외 언론에서도 ‘도심 속 기적’, ‘콘크리트 도시의 생명 회복’으로 소개했다.
특히 파리, 도쿄, 시드니 등은 자국 하천 복원 논의에서 청계천을 중요한 참고 사례로 인용하고 있고,
서울이 이 복원을 통해 ‘환경 중심의 도시 계획’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청계천은 이제 서울 시민뿐 아니라,
세계 도시계획자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자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의 청계천은 단지 한때의 하천을 되돌린 것이 아니라 조선의 개천에서, 식민지 시대 서민의 삶터로,
산업화기의 뒷골목에서, 복원의 도시 상징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층위를 간직한 공간이다.
매일 아침 청계천을 달리는 동안, 삼일교를 지나, 광통교와 장통교, 수표교를 거쳐
광화문까지의 짧은 구간 안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포개져 있다.
정조의 능 행차가 지나던 광통교에는 그 시절을 기리는 부조가 남아 있고,
수표교 아래 물고기들은 다시 도심 속 생태계를 이루며 유영하고 있다.
지금의 청계천을 아침마다 달리며
1930년대 박태원이 보았을 그 당시의 천변 풍경을 오버랩해 보면서
이처럼 급속하게 달라진 문명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도시의 시간은 곧 사람의 시간이며, 하천은 그것을 흐르는 선이다.
청계천은 과거와 미래, 기술과 감성이 겹쳐진 도시의 살아 있는 풍경이다.
청계천을 따라 달리는 아침의 시간은 단순한 출근길이 아니라,
도시가 선택하고 회복해 온 구조를 천천히 읽어내는 시간이 된다.
2025년 6월 9일, 월요일
# 청계천의 생물들
청계천의 아침은 물빛만큼이나 다양한 생명들의 움직임으로 깨어난다.
지상의 생물 중에 가장 흔하게 눈에 띄는 건 비둘기들이다.
그들은 다리 난간 위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때로는 다리 밑 그늘에서 물을 마시며 깃을 정리한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도 쉽게 놀라지 않고, 마지못해 푸드덕 날아오르면
그 잿빛 날갯짓이 도시의 차가운 공기 속에 짧은 생동감을 남긴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하얀 백로와 회색빛 왜가리가 천천히 물 위를 걷고 있다.
그들의 걸음은 조용하고 우아하다,
마치 시간을 더디게 흘려보내는 듯 가끔 고개를 깊이 숙여 물속을 엿보다가,
찰나의 순간에 부리를 번개처럼 내리꽂는다.
맑은 물이 튀고, 은빛 물고기 한 마리가 반짝이며 공중에 잠시 떠오른다.
그 짧은 생의 리듬 안에 자연의 질서가 고요히 깃들어 있다.
그리고 물가의 평온한 구석에는
청둥오리 한 쌍이 잔잔한 물결에 몸을 실어 유유히 흘러간다.
푸른빛과 갈색이 어우러진 깃털이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번쩍인다.
그 평화로운 동행의 풍경이 마치 오래된 연인의 대화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출근길에 바삐 걸음을 옮길 때에도,
청계천의 물길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그 위에는 비둘기들의 날개짓, 백로의 기다림,
왜가리의 사색과 청둥오리의 유영이 겹겹이 펼쳐진다.
청계천의 얕은 수면 아래에서는 잉어들이 느릿하게 흐름을 가른다.
크지 않은 물살에도 몸을 맡기듯 미묘하게 방향을 바꾸며,
이끼낀 돌판 바닥 위를 스치듯 지나간다.
눈에 띄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묵직한 움직임이 물길의 깊이를 차분히 드러낸다.
그 주변으로는 작은 물고기들이 무리를 이루어 재빠르게 오간다.
한순간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고, 물속 수초 사이를 파고들며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넘나든다.
잔잔한 수면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그 미세한 움직임들이 살아 있는 결을 만들어 낸다.
잉어들의 느린 유영과 작은 물고기들의 분주한 움직임들이 한 화면 안에 겹치며,
청계천은 단순한 도심의 물길을 넘어 하나의 살아 있는 생태로 아침을 완성한다.
2025년 10월 30일, 목요일
# 청계천 광통교
매일 아침, 을지로4가역에서 내려 청계천 산책로로 발을 들이면,
도심의 공기 속에서도 계절의 숨결이 또렷하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물결 위로 아침 햇살이 반짝이고,
얕은 물살은 작은 잔물결을 일으키며 유유히 동쪽으로 흘러간다.
배오개다리에서 시작된 아침 출근길은
세운교, 관수교, 수표교, 삼일교를 지나 광통교로 향한다.
청계천 산책길 위에서 아침마다 마주치는 모습들은 언제나 새롭다.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달려오는 외국인들,
그들의 밝은 운동복이 도시의 천변 풍경 속에서 한층 더 선명하게 빛난다.
리드미컬한 발걸음이 청계천의 물소리 위로 얹히며,
오래된 도시의 물길 위에 전혀 다른 박자를 만들어 낸다.
그들은 무슨 연유로, 이 낯선 도시의 이른 아침을 이렇게 달리고 있을까?
출장 중의 잠깐일 수도 있고,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의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해외 근무 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중동의 두바이나 리야드, 서남아시아 뭄바이나 다카의 이른 새벽
낯선 거리의 냄새와 언어가 뒤섞인 공기 속을 달리던 그 시간 들,
고향이 아닌 곳에서 외로움을 다독이던
그 산책길의 정적이 청계천의 물결과 겹쳐진다.
광통교 아래를 지날 때면,
신덕왕후 강씨의 이야기가 물소리 속에서 은은히 떠오른다.
태조 이성계가 깊이 사랑했던 여인이지만,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운명은 가혹하게 이어졌다.
태조가 남긴 왕권을 둘러싸고 왕자의 난에서 왕좌를 차지한 아들 태종 이방원은
정치적 위협과 불필요한 과거의 그림자를 제거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정동 언덕에 있던 신덕왕후의 정릉은 그의 눈에는 견디기 힘든 존재였고,
결국 정릉동으로 옮겨졌다.
무덤의 석물들은 해체되어 청계천의 돌다리 공사에 사용되었고,
일부는 오늘날 광통교를 받치는 기초가 되었다.
지금 광통교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
그 돌 하나 하나에 깃든 한 시대의 사랑과 권력, 질투와 슬픔이 느껴진다.
왕의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시대의 바람은 여인의 흔적을 도심 속 돌다리로 남겼다.
그 속을 스치며 걷는 이에게는 물길 위로 떠도는 여인의
숨결과 역사의 무게가 동시에 느껴진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함께 걷고 달리며,
600년 전 왕후의 흔적과 오늘의 서울이 같은 하늘 아래 이어진다.
가을 아침의 청계천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
낯섦과 익숙함이 한 물줄기처럼 흘러가는 서정의 길이다.
2025년 12월 4일, 금요일
# 청계천 빛초롱 축제
아침 출근길, 청계천 배오개다리에서 물길을 따라 슬로 조깅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광화문의 청계광장에 닿는다.
아직 도심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의 시간, 청계천은 가장 담백한 얼굴로 하루를 맞는다.
물은 낮은 소리로 흐르고, 다리 아래를 스치는 공기는 밤의 온기를 조금씩 식혀 보낸다.
발걸음과 호흡이 물소리와 섞이면서 시간은 시계가 아니라 몸의 리듬으로 흘러간다.
이른 아침의 청계천은 말을 아끼는 공간이다.
출근을 재촉하지도, 서두르라고 다그치지도 않은 채 그저 묵묵히 곁을 내어준다.
연말을 맞아 청계천과 청계광장에는 ‘2025 서울빛초롱축제’가 한창이다.
청계천을 따라 광화문광장까지 이어진 빛 조형물들은 낮 동안에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색과 형태가 또렷한 조형물들은 물길 위에 놓인 전시물처럼 차분히 서 있고,
흐르는 물 위로 윤곽이 잔잔히 비친다. 아침에 달리며 스쳐 지나갈 때면,
이 계절이 연말임을 조용히 알려주는 장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해가 지고 조형물마다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면 청계천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간의 공기가 되고,
물 위에 흔들리는 조명은 고정된 조형물마저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다리와 난간을 따라 이어진 불빛은 청계천 전체를 하나의 긴 이야기처럼 엮어 놓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낮에는 ‘보는’ 축제였다면, 밤에는 그 빛 속을 ‘걷는’ 시간이 된다.
오늘 저녁에는 이 축제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퇴근 후 딸과 아내와 함께 청계천을 걸었다.
같은 길이었지만, 가족과 함께한 야간의 청계천은 평소 혼자 달리던 아침과는
전혀 다른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마치 빛 하나하나가 어린 시절 동화 속 장면처럼 다가왔고,
이제 장년이 된 어른의 시선에서는 그 빛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표지처럼 읽혔다.
웃음과 대화가 물소리 위에 겹쳐지며,
청계천은 개인의 사유 공간에서 가족의 기억이 쌓이는 장소로 변해 갔다.
이 모든 풍경이 가능해진 것은 청계천이 복원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도로와 구조물 아래에 가려졌던 물길이 다시 드러나면서,
도시는 단순히 교통의 효율을 넘어서 사람의 시간을 품는 공간을 되찾았다.
만약 청계천이 여전히 덮여 있었다면,
아침의 조깅도, 밤의 산책도, 빛초롱 축제의 풍경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호사를 일상의 일부로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스럽고 고맙게 느껴진다.
더욱 뿌듯한 것은 이 공간이 이제 특정한 세대나 지역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빛초롱 축제가 열리는 청계천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서로 다른 언어가 오가지만, 빛과 물길 앞에서는 감탄의 표정이 비슷해진다.
청계천의 복원은 과거를 되살린 데서 그치지 않고,
서울이라는 도시를 세계와 공유할 수 있는 무대로 확장시켰다.
아침의 청계천이 하루를 정돈하는 공간이라면,
밤의 청계천은 하루를 되돌아보게 하는 공간이었다.
같은 물길, 같은 다리, 같은 길이지만,
시간과 동행이 바뀌자 풍경은 많이 다른 의미를 품었다.
또한 이 도시가 얼마나 많은 선택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 선택 덕분에 이처럼 물과 빛,
사람과 기억이 겹쳐지는 청계천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2026년 1월
# 청계천 삼일 빌딩
매일 아침 배오개다리에서 청계천으로 내려서면 자연스럽게 슬로 조깅을 시작한다.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몸이 풀리고, 몇 개의 다리를 지나며 호흡이 일정해질 즈음이면
청계천의 풍경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지도가 된다.
좌우로 늘어선 건물들, 다리와 보행로의 굴곡,
햇빛이 드는 방향까지도 이제는 몸에서 기억하게 되었다.
매일 비슷한 속도로 달리다 보니 청계천을 따라 서 있는 몇몇 이름있는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거리의 기준점이자 이정표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분명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건물이 삼일 빌딩이다.
청계천 오른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삼일 빌딩은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청계광장이 나온다는 안내판처럼 느껴진다.
삼일 빌딩은 한국 건축사에서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건물이다.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하고, 1968년에 착공해 1970년 10월에 완공된 이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31층 규모로 당시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국내 최초로 커튼월 방식을 적용한 마천루였으며,
직선적이고 간결한 형태,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
모더니즘 건축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건물은 단순히 높았던 건물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산업화와 도시화를 향해
본격적으로 속도를 올리던 시기의 건축적 선언에 가까웠다.
지금은 삼일 빌딩보다 훨씬 높은 건물들이 도심 곳곳에 즐비하지만,
어렸을 적 기억 속의 삼일 빌딩은 전혀 다른 위상을 지니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 삼일고가도로와 함께 등장하던 그 모습은
‘한국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는 말 그 자체였고,
고도성장의 기세와 자신감을 상징하는 구조물처럼 보였다.
하나의 건물이 국가의 성장 서사를 대신 말해주던 시절에,
삼일 빌딩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삼미그룹 사옥으로 시작해 산업은행 본점을 거쳐,
현재는 NH아문디자산운용에 매각되어 SK네트웍스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건물의 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시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2020년 KCC건설에 의해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되며 외관은 한층 정제되고 깔끔해졌다.
노후 함을 덮어 감추기보다는,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정리하고 다시 정돈한 인상에 가깝다.
새로워졌지만 낯설지 않고, 단정해졌지만 과하지 않다.
건설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삼일 빌딩을 바라보면, 이 건물은 단순한 랜드마크를 넘어선다.
커튼월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던 당시의 도전과 시행착오, 고층화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실험,
그리고 산업과 금융, 도시 인프라가 동시에 성장하던 시기의 긴장과 기대가
이 건물의 구조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