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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크러쉬 Feb 25. 2022

당신이 알아야할 영화속 여성 예술가들

영화에서 다뤄지는 여성예술가들의 모습들


까미유 끌로델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까미유 끌로델(1989)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까미유 끌로델 (2013)


까미유 끌로델은 로댕에 가려지긴 했어도 당대 인정받고있던 조각가였습니다. 원치 않았던 유산 이후 로댕의 곁을 떠나지만,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많은 노력을 해왔고 실제로 1895년부터는 그녀만의 독창성이 크게 드러나 로댕의 제자라는 꼬리표를 극복한듯 보이기도 했죠. 이후 그녀의 행보는 용기있는 노력의 연속이었지만, 그 노력은 그녀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보수사회와 언론은 배경없는 젊은 여자를 주목하지 않았고, 연인이었던 로댕이 자신의 영감을 훔쳐갔다는 고통 속에 괴로워하죠


안팎으로 녹록치 않은 현실에 괴로워하던 그녀는, 조현병 발병 / 아버지의 죽음 / 전시의 실패등으로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보내졌고, 무려 30여년의 세월동안 수용세월을 보냈어야하죠. 쓸쓸히 죽어간 1943년까지 그녀는 단 한작품도 만들지 않았으며, 그동안의 모든 노력은 허공에 손을 휘젓는것처럼 의미없는 것들이 되버렸습니다. 1951년 첫 회고전이 열렸을땐 그녀가 사망한지 8년이 지난 후였고, 그녀가 작품성 있는 화가로 인정받았던건 무려 1980년대였습니다. 재능 넘치고 아름답던 카미유 클로델의 삶은 그녀의 천재성만큼 아름답지 않았고, 무너지지 않을거란 자신감은 거대하고 가혹한 현실 앞에 무너져내렸쬬

까미유 끌로델의 일생은 총 두번 영화화가 됩니다. 1989년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한 버젼과 2013년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버젼이 있죠. 이자벨 아자니의 영화가 까미유 끌로델의 흥망성쇠, 사랑과 배신, 기쁨과 절망을 모두 담아낸 버젼이라면, 줄리엣 비노쉬의 영화는 1915년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서의 사흘, 아무 희망도 없었던 그녀의 마지막 일생을 다루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


셀마 헤이엑이 연기한 프리다 (2002)

멕시코의 보물이자 20세기 페미니스트의 우상으로 대표되는 프리다칼로는 자화상에 자신의 페르소나를 담아내며, 당대 최고의 국민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의 연인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난 경우입니다. 자화상 속에서 그녀는 때론 보석 / 리본 / 스커트같은 화려한 여성의 옷차림으로 치장하고 있지만, 때때론 짧은 머리에 남성의 복장을 하고 나타나거나 두꺼운 눈썹 묘사를 강조하여 남성적 외양을 과장하기도 하죠. 그만큼 프리다칼로는 젠더에 얽매이지 않고, 그녀안에 내재된 양성적인 면을 넘나들며 표현했습니다


그녀가 주로 자화상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어릴때부터 척추성 소아마비를 앓고있었고, 대학교 1학년때 심한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었던 그녀는, 오로지 그림 그리는 일만 할수 있었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관찰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게 평생을 두고 자화상을 그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활동할 당시 유럽에서는 모더니즘, 초현실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으나, 자신은 어느 한 사조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단 멕시코적인것에 뿌리를 둔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죠.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이자 인생 그 자체였던 자화상이라 어찌보면 당연한 설명일수도 있습니다.

2002년 나왔던 영화 프리다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20여년에 걸친 결혼생활을 모조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기다 이야기 흐름에 특별한 강조점도 없어 종종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방황하기도하죠. 어찌보면 이 영화가 프리다 칼로라는 화가를 다룬다기보단, 프리다와 디에고의 험난한 결혼생활을 다루려는 영화가 아닐까란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나혜석


윤정희 - 신영균 주연의 화조(1978)


한국 미술사의 첫 여성 예술가인 나혜석은, 최초의 여성 서양 화가이자, 근대적 여성인권사상을 지닌 운동가이기도합니다, 여성들의 권위와 지위가 낮았떤 1900년대 초반부에 활동하던 그녀는 변호사였던 남편과 이혼한 후에도 조선미술전람에 입선하고, 여자미술학사를 설립하는등 신여성의 행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연애, 결혼,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식민지 조선사회의 가부장제가 가지고있는 모순을 비판하는 <이혼고백장>과 <신생활에 들면서>를 발표하기도 하는데요.  사회구조적 모순과 제약을 뛰어넘었던 그녀의 행보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위한 노력이었다고 보여집니다


나혜석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화조>는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진행됩니다. 1. 최린 - 나혜석 - 김우영간의 멜로드라마로 압축되었고 2.  문예영화로서의 나혜석의 화가로서의 열정과 도덕성을 부각시키려다보니 나혜석과 최린의 불륜이 예술을 매개로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조우로 미화되었다는 점에서 1970년대의 한국에서 예술가 영화가 처했던 사회적 모순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지만 그시대 한국사회가 꿈꾸었던 유럽식 생활, "유럽식 사랑"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기도합니다.








모드 루이스



여러분은 소박파라는 개념을 아시나요? 미술정규교육을 받지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하여 기존 미술양식이나 규범엔 일체 관심이 없는 일군의 작가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이 인상적인 작가들이라 영어로는 순진하다는 의미의 naive를 가져와 naive art(소박파)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러한 소박파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캐나다 출신 모드 루이스가 있습니다


선천적인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고통을 받았던 그녀는 손으로 그린 크리스마스카드로 예술활동을 시작한 경우인데요.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는 핸디캡을 지니고 있는 그녀이기에 그림이 대부분 8~10인치를 넘지않는 작은 크기지만, 엄청난 다작가라 그녀의 작은 집 모든 부분엔 그녀가 그린 그림들로 채워져있었죠. 마지막 3,4년동안 그림이 7~10달러로 팔리기 시작하더니 그후 민속예술가로 알려지게된 모드 루이스는 심지어 1970년대 미국 백악관에 의해 주문될 정도로 엄청난 주목을 받게됩니다. 지병이었던 폐렴으로 사망할때까지 힘이 되는한 그림을 그렸던 그녀였고, 그런 모드의 그림들이 그려진 그녀의 작은집은 현재 캐나다 노바스코샤 미술관에 전시되어있습니다

모드 루이스의 창작과정과 사랑을 다룬 영화 <내사랑>은 국내에도 많은 팬이 있는 영화인데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실제 모드 다울리(결혼 전 그녀의 성은 다울리입니다)는 결코 영화처럼 아름답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모드 루이스라는 화가가 생전에 충분히 유명세를 탄 경우임에도, 모드와 남편 에버렛 루이스는 죽을때까지 가난하게 살았으며. 에버렛은 모드의 그림이 인기를 얻는것도 모르고 집밖으로 내보내지도 않으며 그림만 그리게 했죠. 실제로 모드의 사망이후 그는 생전 모드의 물건을 모두 팔아버리고 홀아비로 지내다 강도의 습격으로 사망했고요. 그래서인지 전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에버렛 루이스가 영화가 그리는것같은 사람인지 의심할수밖에 없었습니다. 미화될수밖에 없는 영화에서도 종종 폭력성을 띄는 인물이니까요








버지니아 울프


니콜 키드먼은,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한 <디 아워스>로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 영미 모더니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중 한명이며, 의식의 흐름 기법을 고안한 선구자입니다. 서양문학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작가인데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이전엔 간과되었던 페미니즘 작가로서의 측면들이 재조명되어, 페미니즘 사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도 평가받습니다. 


영화 <디 아워스>는 상당히 복잡한 방식으로 울프에게 접근합니다. 원작은 마이클 커닝햄이 그녀의 대표작 <댈러웨이 부인>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펼쳐낸 동명의 소설인데, 댈러웨이 부인을 구상하고 있는 1923년 버지니아 울프와, 댈러웨이 부인을 읽은 독자 1949년의 로라 브라운,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처럼 살고있는 2001년의 클라리사 본이라는, 따로 떨어진 세계를 살아가는 세명의 여성의 하루가 전부 <댈러웨이 부인>으로 연결되있다는 전제를 깔고가죠. 애초에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재구성한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을 다시한번 영화각본가의 손을 거쳐, 스티븐 달드리의 연출로 완성되는 복잡한 과정속 이 영화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가 후대의 여성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들을 소설보다 조금더 노골적이고 밀접하게 연관짓습니다. 문학적인 언어가 사라지고 복잡함이 줄어들었지만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중요한 키워드인 시간, 죽음, 삶, 자살, 양성애같은 모티브는 버려지지 않고 장르에 맞게 잘 변형되었죠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생애를 따라가다보면 여러 굴곡들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단순히 그녀의 기록들만 보자면 1948년 노벨 문학상 후보 / 저널리스트 / 배우라는 화려한 커리어만 생각할수도 있지만, 이 모든건 당연하게도 쉽게 얻어낸것이 아니죠. 남편의 이름으로 출간했던 <클로딘 이야기>시리즈의 저각권리를 인정받기위해 투쟁해야했던 세월이 예시가 될수도 있곘네요. 클로딘시리즈 이후 나왔던 <셰리>, <여명>, <시도>와 같은 작품들에서 유난히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발견된것은 그녀 자신이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는 점과도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화려한 인생이었고, 그녀의 소설에 녹아든 성에 대한 자유롭고 대담한 표현과 주체적 여성상은 콜레트를 당대의 페미니스트로 규정짓게 하지만, 정작 그녀의 텍스트만 보자면 정치적 의미의 페미니즘보다는 모든 규범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캐릭터가 줄수있는 대리만족, 대리해방감의 성격이 강하다는걸 알수있습니다. 

영화 <콜레트>가 보여주고 싶은 시기는, 첫번째 결혼후 남편의 이름으로 출간했던 <클로딘 시리즈>의 시점입니다. 학창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학교에서의 클로딘>을 발표하려 했으나 여류작가의 책은 아무도 사주지 않으니 남편의 명성을 이용해야 한단 관행이 이어지던 벨에포크 시대의 차별과 그렇게 나온 클로딘시리즈의 성공이 서사의 근간을 이루는데 시리즈의 성공과 반대로 악화되어가는 윌리와 콜레트의 관계, 이후 1910년 두사람이 완전히 이혼하면서 마침내 홀로서게된 콜레트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남편 윌리와의 관계에만 힘을 쏟은 나머지, 후반부 콜레트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어머니 시도의 분량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점인데요. <클로딘의 집> 서문에서 "점차적으로 나머지 내 작품을 지배하는 인물인 어머니는 나를 떠난적이 없다"고 나오듯 어머니에 대한 고찰과 그리움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가렛 킨



남편에게서 자신이 쓴 소설의 권리를 되찾아오려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처럼, 화가 마가렛 킨 역시 남편으로부터 자신이 그린 그림의 소유권을 되찾기위해 부단히도 노력한 경우입니다. 술집 벽 한켠에 걸려있던 인형처럼 큰 눈을 그린 그림들이 우연히 신문에 걸리게 되고, 기사에 얹혀진 작가 월터 킨의 그럴듯한 해석으로 대중적 인기를 동반하게 되는데 알고보니 이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소녀들을 그린 진짜 주인공은 그림을 팔아 한몫 단단히 챙긴 월터가 아닌 그의 아내 마가렛이었다는것이 밝혀지죠

마가렛은 12년의 긴 법정싸움 끝에야 재판장에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그림 <증거번호 223>을 완성하며 진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큰 눈을 가졌지만 하나도 기뻐보이지 않고 애잔한 감정마저 들게했던 그녀의 그림속 소녀들은 작가가 진짜 자신을 찾으러 떠난 하와이에서 만난 자유, 종교(그녀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만난후 더이상 슬픈 눈망울을 띠고 있지 않았죠. 평생을 그림속 인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던 마가렛 킨만의 일관된 작품세계입니다

마가렛 킨의 일생과, <빅아이즈>의 탄생을 다룬 동명의 영화는, 무려 팀버튼이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되었는데요. 흔히 사람들은 그가 판타지 영화만 잘 만드는 감독이 아닐까?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는 이전에도 에드우드같은 실존인물로 영화를 만든적이 있고, <빅피쉬>같은 잔잔한 드라마장르의 영화도 잘 만드는 감독이었죠. 무려 11년동안 이 영화를 구상했다던 팀 버튼의 인터뷰에서 볼수있듯, 이 영화는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했던 1950년대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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