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과 파리바게트를 (前) 제과제빵사 시점으로 보기

by 박씨

런던 베이글 뮤지엄과 평택 SPL 공장에서 사람이 죽은 것으로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SPC 불매는 사회에 은연히 깔려 있고,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근로자 과로사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가 즐겁게 먹을 빵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들어야만 할까. 우선 필자는 SPC의 평택 SPL 공장의 사고는 안전관리 미비에 의한 사고사이며,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인적관리 미비로 인한 과중한 업무 분담으로 인한 과로사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빵 공장은 정말 위험하고 노동력이 착취당하고, 사람이 죽어야만 굴러가는 구조일까? 사람이 다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단, 제과제빵사이자 빵집 사장인 아버지를 보면 노동력이 착취당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아버지는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일반 근로자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 6시 출근, 오후 5시 마무리 이후 추가적인 업무가 있다면 가게 일을 손보는 등의 일을 하신다. 이 일을 월화수목금토를 20년 내내 하고 있는 것을 보며 했던 생각은 '나는 빵은 해도 빵집은 안 한다.'였다. 그렇다면 일반 근로자였던 나는 어땠을까. 업장마다 많이 다르긴 했지만 통상적으로 아침 7시 출근 5시 퇴근 혹은 4시 퇴근. 스케줄 근무로 주 5일을 통상적으로 근무했다. 내 체력이 나빴을 뿐, 나쁜 근로 조건은 아니었다. 가끔 업무가 가중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추가근무를 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그 기간도 길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회사 내부에 불만은 있을 순 있어도, '아 이러다 죽겠다.' 싶을 정도의 노동 강도는 없었다. 체력적으로 받친 날은 늘 있었겠지만, 죽겠다 싶을 정도의 노동 강도로써 무리했던 적은 잘 없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하나였다. 아버지와 같은 자영업자이자, 내 고용주였던 사장님. 제과제빵 업계가 몸 쓰는 일이고, 원체 갈려나가는 일이지만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사례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은 일이다.


정 모 씨는 홀 근무 위주였다고 한들 2025년 7월의 경우에는 근무하기 상당히 힘든 근무 환경이다. 통상적으로 빵을 굽는 환경은 습하고, 더운 경우가 많다. 베이글 발효 온도는 30도-35도, 베이글 굽는 온도는 대략 210도 정도인데 이렇게 되면 근무하기 어렵다. 아무리 근무 환경이 홀이었다지만 관리자 입장에서 오갔을 정 모씨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노동 환경도 과로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리라 사료된다.

베이커리에 근무했을 당시 더위에 취약한 필자의 경우에는 어지러움을 호소했던 적도 있다. 80시간 노동 근무 시간뿐만 아니라, 쉽지 않은 근무 환경이 정 모 씨의 사망을 앞당겼을 확률이 높다고 봤다.(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빵 만드는 환경은 위험한 환경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의 의견은 애매하다. 필자는 앞서 말했던 대로, 모태 빵수저다. 아버지가 태어날 때부터 빵을 만들고 계셨고, 빵집 공장 자체에서 뛰어놀고, 라면 나눠 먹고 했던 기억이 있을 정도다. 기계 사이 구석에 박혀서 혼자 놀고 있을 때도 아버지는 딱히 말리시지는 않으셨으니 그렇게까지 위험한 공간이 아니었다는 소리가 된다.(아버지가 원천적으로 위협을 원천적으로 차단을 하셨던 이유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필자가 빵 공장에 가지는 기억이 '무조건 안전하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필자는 조리 특성화고 베이커리과를 나왔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당시 친구의 실수로 인해 빵 만드는 반죽기에 손이 끼여 급하게 정형외과를 갔던 기억이 있다.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멍 투성이인 손을 보고 아버지는 '야 그 정도면 천운이다.'라고 언급하셨던 것을 보면 상당히 운이 좋았던 케이스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다소 극단적인 표현을 빌려오면, 반죽기에 손이 끼이면 '손 병신'이 되는 경우도 꽤 있다고.


그 뒤로 필자의 고등학교를 가 보니, 안전바를 내리지 않으면 반죽기가 작동이 되지 않는 반죽기로 바꿔놓으시기는 했다.(왜 나 때는 안 해주시고) 즉, 학교라는 작은 집단에서도 해결 가능한 문제다. 왜 SPC는 그저 관망하고만 있을까? 이 지점이 가장 의문이다. 비용적으로 그냥 두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싸게 먹혀서일지, 기술적인 결함으로 고치지 못하는지는, SPC 입장에서는 그저 소비자 1일 사람이 하는 불평과 불만일 수도 있다. 다만, 고쳐진 것을 보고 왜 SPC는 고쳐지지 못했을까? 에 대한 단순한 의문이 든다. 극단적으로는 기계 고치는 것보다 죽은 사람의 합의금이 더 싸다는 계산이 나와서. 일 수도 있겠다만, 그렇게까지는 인간성 없는 기업으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 어차피 제빵사는 높은 급여를 받지 않는 현실은 진즉 깨우쳤다. 그리고 필자는 체력이 안 돼서 다른 업종으로 도망 온 사람이다. 다만, 그곳에는 아직도 제과와 제빵을 꿈꾸는 친구들이 있고, 현업에 있는 친구, 아버지의 지인들이 있다. 사람들이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고, 소중한 사람들의 꿈이 담겨 있는 장소에서 사람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