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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Jan 28. 2023

내 남편의 와이프 사용법

그는 오늘도 가스라이팅 중


이성의 형제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비록 유년시절에 피 터지게 싸우며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을지언정 말이다. 미리부터 이성의 형제와 부딪혀 보면 이성에 대한 환상 따위는 없어진다. 

우리 부부가 거의 싸우지 않았던 이유는 각자에게 이성의 형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는 너무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남자인 남동생이 있고, 남편에게는 너무나 여성스러운 누나가 셋이나 있다. 나의 기대치는 너무 낮았고, 남편의 레벨은 매우 높았다. 이성의 형제가 훈련시켜 준 결과다. 

종종 이성의 형제가 없는 친구들이 남편과의 소통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면 나는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게 보통이야......'


어쨌든 나에게 시누 셋은 결혼 당시 감당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첫째 형님은 나와 띠동갑 이상으로 차이가 난다. 쉽지 않은 관계이다. 하지만 결혼 후 십 년이 지난 지금, 여자보다 더 여자를 잘 알고 있는 내 남편의 센스를 형성한 것이 바로 나의 시누들이라고 생각하니 감사하고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내 남편은 내 사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내 남편은 갈등상황을 요리조리 잘 피한다. 

결혼하고 십 년이 넘어보니 이제는 남편의 패턴을 어느 정도 꾀게 되었다. 그런데, 알면서도 매번 넘어간다. 


취미생활에 진심인 그는 다양한 취미활동을 정말 열심히도 한다. 아이들 어릴 적부터 나 혼자 애 둘을 보라고 내팽겨쳐놓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열심히 해왔다. 혼자 휴가 내고 다이빙 자격증도 따러가고, 자전거 국토종주, 바다며, 스키장이며, 혼자 신나게 다녀올 동안 나 혼자 애 둘을 떠맡고 있으면 부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남편이 취미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싱글벙글 웃으며 작은 선물을 내민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 와이프는 어쩜 그렇게 애들도 잘 보고, 살림도 잘하고, 마음도 넓고, 얼굴도 예쁜지. 덕분에 내가 잘 다녀왔어요. "

이 한마디에 모든 분노가 눈 녹듯이 사그라진다. 뒤돌아서서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가만히 있었지 싶다가도, 이미 화 낼 타이밍을 놓쳐버려 그렇게 넘어가고 만다. 


우리 남편이 내가 화내려고 할 때 가장 잘 쓰는 말이 '네가 예뻐서 그래.'이다. 

이 한마디가 뭐라고! 언성이 높아지다가 깔깔 웃게 된다. 나도 안다. 누나 셋으로 다져진 그의 신통한 처세술이라는 것을...... 그래도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안 좋아질 여자가 있을까?


분명 이 사람의 대화법을 평균의 남자들이 들으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의 관계는 때로는 진실이 아닐 때 더욱 원만해지기도 한다.


울화통이 터질 뻔한 상황들을 매번 능숙하게 회피해 나가는 그에게 나는 오늘도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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