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첫사랑, 일본인들의初恋

첫사랑 vs 初恋

by 키리카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First love;初恋’로 오래간만에 일드감성에 푹 빠져버렸다. 중고교 시절 일본 애니메이션과 음악에 푹 빠져 살았던 나에게, 우타다히카루의 노래를 배경으로 드라마가 나왔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절제된 감정, 문학적 내레이션, 서정적 이미지에 눈물주머니가 한 방울씩 차 오르다 이내 넘쳐흐르고 있었다.

'첫사랑, first love, 初恋(하츠코이)'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번역이 되는데, 세 단어의 느낌은 너무 다르다. 특히나 한국어의 '첫사랑'이 주는 어감과 일본어의 '初恋’가 주는 어감은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엄연히 다르다.


'사랑'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서라도 '사랑'은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이다. 남녀 간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우정,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이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우리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한자는 '愛(애)'가 더욱 친숙하다. 손톱 爪(조)와 지붕을 뜻하는 冖(멱) 자에 마음 心(심)과 천천히 걸을 (쇠)가 담겨있다. 지켜주는 마음과 서서히 조심스레 다가가는 마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사랑의 마음은 사랑을 하는 주체로부터 시작되고, 과정 중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순우리말의 '처음'과 '사랑'의 단어가 주는 소리 자체만 들어도 풋풋함과 어리숙함이 연상된다.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첫사랑은 미숙하고, 어리다는 의미가 강하다. 조금 더 성숙한 사랑에 접근하기 이전에 겪는 공부나 경험 같은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첫사랑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오는 첫사랑만 봐도 알 수 있다.

건축학개론에서 승민과 서연은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조차 서툴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서로에 대한 오해로 멀어지게 된다. 그렇게 우리가 보아온 첫사랑은 서로의 감정조차 확인할 길이 없는 불확실한 마음의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첫사랑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들의 대부분은 이야기의 중반, 아니 그 이상까지도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묘사한다. 친구인 것 같다가, 아닌 것 같다가, 삼각관계도 되었다가, 서로 상처도 주고받다가 업치락 뒤치락 과정에 대한 묘사를 굉장히 상세하게 다룬다. 한 마디로 밀당 과정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그리고 먼 훗날 재회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아, 내가 이 사람을 좋아했었구나. 이런 것이 첫사랑의 마음이구나.'


일본의 '初恋'는 미숙함의 어감보다는 운명적 의미의 어감이 더 강하다. '恋’라는 한자만 봐도 그렇다. 일본어 간자체로 쓰인 이 '그리워할 련'이라는 한자를 원문자로 풀어보면 '戀(연)'이다. 마음심 위에 실이 두 개, 그 사이를 말로 잇고 있다. 마음을 잇고 있는 단단한 실, 이렇게 일본인들의 '初恋’에는 운명적인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둘의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짧다. 한마디로 밀당이 없다. 감정을 확인하는 순간은 짧고 확실한데, 그 이후의 서사가 길다. 그 무엇도 갈라놓지 못하는 마음의 '연', 태어날 때부터 연결되어 있는 운명의 실을 마음으로 깨우치는 것, 그것이 그들의 '恋'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첫사랑 즉 '初恋’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교 시절 처음으로 '상실의 시대 (ノルウェイ の森)’를 읽고서는 이 책이 왜 유명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후 일본에서 생활을 해 보니 주인공의 첫사랑 이야기가 그들의 문화 속에서 확실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1Q84' 역시 세상을 바꾸고서라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질긴 첫사랑의 이야기이다. 점점 그들이 갖고 있는 '初恋’에 대한 세계관이 우리의 '첫사랑' 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몇 달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20세기 소녀'는 'First love;初恋’와 설정 면에서 유사한 점들이 있다. 둘 다 2000년대로 넘어가는 90년대 말의 고교생들의 첫사랑 로맨스이다. 이 둘이 그리는 '첫사랑'과 '初恋’만 비교해 보아도 두 나라가 첫사랑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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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소녀'에서는 주인공 보라와 운호가 서로에 대해 좋아하는 감정을 갖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것이 좋아하는 감정임을 스스로 알아차리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스토리가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시청자는 그러한 엎치락 뒤치락의 과정을 감상하며 자신의 풋풋했던 첫사랑 시절을 반추하게 된다.


반면'First love;初恋’의 야예와 하루미치가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은 굉장히 짧고 확실하다. 하루미치는 야예의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라는 중의적인 질문의 의미를 친구들의 도움으로 재빨리 알아차리고 야예에게 고백하게 되고, 두 사람의 마음은 시리즈 초반에 확실하게 확인이 된다. 그 이후의 연애과정에서도 밀당이라는 것이 없이 두 사람의 마음만은 확고함으로 전개가 된다. 어떤 외부적인 요인으로 둘의 관계가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둘은 어떠한 끈으로 단단하게 엮여있는 듯하다. 극 중에 반복되는 대사 "운명 따위 믿지 않아."는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운명적일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스크린샷 2023-02-05 오후 10.41.45.png 극 중 야예가 반복하는 대사 "운명을 믿지 않아요."
스크린샷 2023-02-05 오후 10.38.34.png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만남이 운명일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시리즈를 관통하고 있다.


'첫사랑'과 '初恋’ 둘의 차이가 어떻든 간에 나는 두 단어가 갖는 두근거리는 울림을 좋아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훈훈한 남녀의 풋풋하고 애틋한 러브스토리는 메마른 감성세포를 깨워준다. 혹시 지금 나의 마음이 치열한 하루 속에 메마르고 쩍쩍 갈라져 간다면 어떤 형태의 첫사랑이든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 보는 것은 힐링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오늘 다양한 첫사랑의 이야기에 한 번 푹 빠져 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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