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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Jul 28. 2023

고기선양이 아니고~ 국위선양!

잘할 줄 알았어!


7월 21일 (금)


어제 나름 늦게까지 비장한 각오로 큰 아이는 태권도 품새를 연습했고, 둘째는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연습했다. 어쩐지 둘 다 표정이 진지하다.

“엄마, 나 진짜 해?”

큰애는 언제나처럼 자신감 없이 할까 말까 망설인다.

“괜찮다니까! 조금 틀려도 걔네는 몰라, 그냥 힘차게만 해! 멋있다고 할 거야!”

언제나처럼 자기주장도 강하고 스스로 씩씩하게 하는 둘째는 걱정이 덜한 것에 비해, 자신감 없고, 느릿느릿한 큰애가 걱정이다. 그래도 저렇게 뭔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일주일간의 변화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우리 아이들이 꼭 자신감 있게만 즐기고 왔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캠프에 넣고,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서 집안일을 하고, 커피 한잔 해야지 생각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일부터 주말은 아이들과 함께 아닌가! 그럼 오늘이 이번 주 마지막 자유시간이라는 이야기이다. 시내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구경도 하고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내에 도착한 후, 이제는 너무 여행객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구글맵을 보며 길을 걷는 행동을 자제하려고 한다. 지도를 보며 걸으면 놓지는 풍경들이 있어서 이제는 조금 헤매더라도 길을 보고 걸으려고 한다. 지나가다 “all around the world”라는 가게에 이끌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알록달록 정갈하게 디스플레이된 소품들과 화구재료들만 보면 마음이 설렌다.

북유럽 감성의 너무 예쁜 소품들과, 화구재료들…… 색깔별로 진열해 놓으니 그 자체로도 작품이었다. 한참을 이것저것 구경했다. 구경하다 결국 예쁜 에코백 하나를 구입했다. 여기는 꼭 이곳에 머무는 동안 다시 와야겠다.


26년 전에는 리젠트 아케이드가 활성화가 되어 있어서, 그 안에 상점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임대를 기다리는 상점이 많이 보였다. 아케이드 안에도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이곳도 코로나 이후로 경제가 많이 죽어있는 듯했다. 리젠트 아케이드와 캐번디쉬 사이의 통로 중앙에 놓여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타운 뷰가 멋졌다. 영국에 온 후로 줄곳 커피도, 레스토랑도 실패한 터라 큰 기대 없이 커피 한잔과 스콘을 시켰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스콘이 지금까지 영국에서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었다. 역시 작은 동네로 들어가야 맛집을 찾을 수 있는 건가? 이제 용기를 내어 첼튼햄 타운센터에 있는 작은 음식점들도 시도해 보아야겠다.

홀로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오늘, 아이들이 그렇게 힘들어했던 미술관을 가 보기로 하고 미술관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미술관 맞은편에는 도서관이 보였다. 이 도서관도 2~300년은 된 건물 같다. 영국에서는 오히려 모던한 건물이 촌스러워 보일 정도로 오래된 건물의 품격이 무게를 잡고 있다.

좌) 첼튼햄 도서관                                                                  우)첼튼햄 미술관


미술관 내부에 들어가니 인근 Glocestershire University 미술대학의 졸업전이 열리고 있었고, 다른 전시실에는 첼튼햄 역사를 보여주는 물건들, 위층에는 공예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작은 전시였지만, 하나하나 지역과 연관되어 의미 있는 것들이었고, 지역주민들이 기부한 골동품들로 지역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또 상주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공간도 있었는데, 지역 미술관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듯했다. 이런 곳에 오면 직업병처럼 전시, 프로그램, 하나하나 유심히 보게 된다. 런던의 큰 미술관, 박물관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소소한 즐거움을 지방의 작은 미술관에서 느끼고 발걸음을 옮긴다.


미술관을 나와 다시 집에 가기 위한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작은 고서점이 보였다.

또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중고 책들이 빼곡히 쌓여있는 작은 서점 한편에 한국어로 된 해리포터 포스터가 보였다. 뭘까? 사장님이 한국인은 아닐 것 같은데…… 코너마다 책들을 살피고, 책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도 많았지만, 저마다의 책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아트 코너에서 작은 수채화 기법에 관한 책을 들었다. 나도 한때는 수채화로 주로 작업을 했지만, 내가 늘 쓰던 기법 외에도 다양한 기법이 소개되어 있었다. 책도 작고 저렴해 얼른 구입을 했다.


한참을 타운센터 구경을 하니 어느덧 한시를 훌쩍 넘겼다. 이제 집에 가서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들 픽업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맞이하러 간다. 오늘 있었던 장기자랑을 아이들은 어떻게 해 냈을까? 자신감 있게만 했으면 좋을 텐데…… 아이들이 나온다. 다행히 큰아이의 표정은 밝다.

“오늘 장기자랑 잘했어? 윤호는 태권도 잘했고? 다혜는? 하입보이 잘했어? “

“엄마, 나 오늘 선생님이 뭐 할 거냐고 물어봐서 태권도한다니까 선생님이 어썸 이래.”

“어, 그래? 그래서 잘 보여줬어? 틀리지는 않았어?”

“응, 틀리지는 않았어.”

“엄마, 오빠가 시범 보일 때, 영국언니들이 막 오 마이갓 이러고, 오빠가 시범하고 나니까 스페인 애들이 오빠한테 말 걸면서 자기들 한국어로 숫자 셀 수 있다고 얘기한다.”

둘째가 늘 상세하게 브리핑을 해 준다. 듣자 하니 그래도 태권도 시범을 보인게 아이들에게 어필이 된 것 같다. 늘 조용히 지내는 큰애가 한 건 한 거 같아 한시름 놓았다.

“다혜는 춤 잘 췄어?”

“응, 하입보이 했어. 여기는 그냥 잘해도 못해도 다 잘했다고 선생님이 막 엄청 칭찬해.”

“그래? 너네 오늘 한국문화 제대로 보여줬네. 국위 선양한 거야, 국위선양! “

“어? 뭐? 엄마 고기선양?”

“아이고… 고기선양이 아니고 국위선양!! 나라의 위세를 널리 알린다고~!”


국위선양은 했는데, 한국어가 문제인가?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나름 한글이 우선이다라고 생각해서 한글 교육에 더 힘썼었는데…… 한국에 가서 한국어 공부도 더 시켜야겠네. 어휴, 할 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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