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자랑을 향해 고!
7월 20일 (목)
그렇게 긴장하면서 아이들을 보낸 월요일이 지나고, 어느덧 목요일이다. 내일이면 벌써 캠프의 1/4이 끝나는 것이니, 시간이 지나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나도, 아이들도 이곳에 적응이 된 듯하다.
아이들을 보내고, 슬쩍 학교 안쪽을 조금 더 둘러보았다. 저 넓은 잔디밭을 따라가면 내가 지내던 기숙사 뒷문이 나온다. 그때는 기숙사에서 학교 메인 건물로 이동할 때 반드시 두세 명이 함께 가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전상의 이유로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때 나는 그 교칙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지금은 자유의 몸이 되어 홀로 다닐 수는 있지만, 외부인인 관계로 학교 안쪽을 구석구석 볼 수는 없으니 이렇게 아이들 보내고 슬쩍슬쩍 지나가듯이 보는 수밖에…….
겨울, 봄 학기가 되면 저 코트에서 Net ball(농구 같은 게임)을 했고, 여름이면 테니스를 했다. 나 역시 운동신경이 좋지 않아 운동시간이 별로 즐겁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큰애가 캠프 끝날 때마다 힘들다고 했던 게 이해는 간다. 나랑 가장 닮은 큰애가 생각하는 모든 행동이 결국 나의 거울인 셈이다.
오늘도 역시 집안 청소를 마무리하고, 한숨 돌리고 앉아 차를 마시며 글을 썼다. 글 쓰기를 마친 후에 아이들을 데리러 나갔다. 오늘도 역시 체력이 방전된 모습이다. 둘째가 또 조잘대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딸 맛은 이런 건가보다.
“엄마, 오늘도 수영했어. 여기는 수영을 매일 해.”
“어~ 그래? 좋네~ 한국에서는 매일 수영하려면 쉽지 않은데.”
“응, 근데, 한국에서 배우는 수영이랑 정말 달라!”
“어떻게?”
“여기는 자유형, 배형, 이런 거 안 하고 그냥 공 가지고 놀기만 해! 그래서 여기서 하는 수영은 재미있어!”
“그래? 그래도 너희가 한국에서 수영을 배우고 와서 너희가 제일 잘하는 거 아냐?”
“아니야. 애들이 다 자기들 3미터 풀에서 바닥치고 올라올 수 있대. 다이빙도 막 하고. “
참 신기하다. 영법을 안 배워도 아이들이 쉽게 물과 친해지고 놀 수 있다는 것이.
“근데, 오빠는 너무했어. 오빠가 어떤 언니들 물에서 공놀이할 때 막 공 뺐고 그래서, 언니들이 탈의실에서 오빠얘기 했어.”
아이고…… 이 첫째는 항상 조용히 사고를 친다.
“윤호야~ 숙녀를 배려해야지~”
“나 안 괴롭혔는데.”
그래… 너 기준에서는 안 괴롭혔겠지. 어이구. 여기에 또 뭐라 하면 꼬치꼬치 따지고 들기 시작하니 그냥 내버려두자.
“근데 엄마, 여기 언니들 너무 착해. 오빠가 괴롭혀도 그냥 그만하라는 얘기밖에 안 해. 한국 같았으면 울고불고 난리 나고, 엄마들 막 찾아오고 그럴 텐데.”
하하… 늘 팩트를 집는 우리 둘째다.
“근데, 오늘 보드에 보니까 내일 뭐 한다고 쓰여있네?”
“엄마, 내일 우리 장기자랑한데! 그래서 나 댄스 할 거야~~!!”
한껏 들떠있는 둘째. 우리 둘째는 K-pop 댄스에 심취해 있는 보통의 4학년 여자아이이다. 여자 걸그룹을 꾀고 있고, 댄스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K-pop이 영국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던 둘째는 첫날 친구에게 싸이밖에 모른다는 말을 듣고 실망했었다. 내 생각에는 싸이만 알아도 대단한 것 같은데 말이다. 나 때에도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이르렀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고, 세종대왕의 한글이 위대하고, 이런 애국심을 배웠었다. 하지만, 정작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늘 나의 국적을 물어볼 때 중국,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에 이르러서도 ‘Korea’ 란 단어가 나오지 않았던 그때 나는 깨달았었다. 아! 우리나라가 생각만큼 대단한 나라가 아니었구나!
그런 와중에 ‘Korea’라는 나라를 알고, 가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위상은 20여 년 전과는 다른 것 같다.
그렇게 우리 둘째는 K-pop 전도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았던 첫째가 은근히 자기도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이다.
“엄마, 나는 뭐 해.”
“잉? 너도 뭐 할 거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거라는데, 의무사항 아니라고.”
“그래? 그래도 나 뭐 해?”
참 답답한 큰아이의 화법이지만, 저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기도 뭔가 보여주고는 싶다는 거다.
“그럼, 너 태권도 시범 어때?”
“태권도? 뭐?”
“너 그래도 태권도 3품이잖아. 그래도 내년에 4품도 따는데, 품새 하나정도는 보여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음, 그럴까?”
관심이 없는 듯 보였던 큰애가 갑자기 이 품새 저 품새를 나에게 보여주며, 이게 좋을지 저게 좋을지 물어본다.
“윤호야 그냥 쉬운 걸로 해도 애들이 다 멋지다고 할 거야! 쉬운 걸로 해!”
“그래도 금강 보다 태백이 3품 품새니까 그걸 하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이렇게 하고, 이렇게..”
어쩐지 조금 흐느적거리는 것 같다.
“조금 틀려도 되니까 기합 넣어서! 힘줘서 해봐~!! “
폼은 조금 어설프지만, 그래도 뭔가 보여주고 싶기는 한가 보다.
둘째는 곡 선정부터 신중했다.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정했다고 한다. 괜찮은 선택인 것 같다.
국제화 시대에, 결국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크게 와닿는다. 그들에게 없는 우리만의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멋지고 귀한 것이라는 것을……
내일이 벌써 캠프의 한 주 마지막이다. 아이들이 점점 다음날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고맙기만 하다. 자! 그럼 내일 한번 보여줘 보자고! 대한민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