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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Jul 31. 2023

우유부단한 엄마의 리더 되기

쉴까 말까


7월 24일 (월)


리더의 역할은 매 순간 결정하는 것이다. 우유부단한 성격의 나는 리더의 자리보다는 실무의 자리가 좋다. 리더가 결정해 주는 것을 충실히 이행해 주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내가 열심히 한 일이 잘못되어도 책임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이지만, 지금은 우리 아이들을 이끌고 가는 리더이다. 나 대신 결정을 내려 줄 남편도 없다. 모든 결정을 내가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


어제부터 하루 종일 끙끙 대던 큰애에게 약도 먹이고, 따뜻한 국물 있는 음식, 따뜻한 레몬차, 발포비타민 등을 먹이고 쉬게 하니 오늘 아침에는 조금 나아져 보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비가 너무 많이 온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에, 나 조차도 몸이 으슬으슬하고 나가기가 싫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 둔 샌드위치 속재료들 덕분에 금방 도시락을 쌌다. 일주일 했다고 그것도 요령이 생겼나 보다.

막상 아이들 학교에 보낼 준비를 하고 나니, 이런 날 아이들을 보내도 될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큰애가 조금 좋아졌다고는 해도, 이대로 더 무리를 했다가 기관지염으로 심해질까 걱정이다. 이제 결정의 기로에 놓였다. 그래도 아이들을 보낼 것인가, 아이들을 하루 집에서 쉬게 할 것인가. 시간이 가고 있었다. 9시가 되기 전에 결정을 마쳐야 한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라는 핑계를 대지만, 이런 결정은 엄마가 해야 맞는 것이다.


“윤호야, 괜찮니? 오늘 갈 수 있겠어?”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린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다. 하루 더 푹 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일주일의 여행동안 안 아픈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이다. 런던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는 동안 비를 맞고 하루종일 있기도 했고, 여기 온 이후로도 쉬지 않고 하루종일 캠프에서 다양한 액티비티로 체력이 소진되었을 법하다.

게다가 한국인은 밥심 아닌가? 나름 다양한 영양소로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다 해도, 역시 뜨끈한 국물과 밥이 없는 식단은 아무래도 허기가 지기 마련이었던 것 같다.


9시가 되었다. 더는 결정을 미룰 수 없다. 모든 결정에서 단호하고 빨랐던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 나랑 성격이 정말 다른 우리 엄마는 늘 망설임이 없었다. 일초 생각하고, 이것이 계산적으로 조금 더 나은 선택이다 싶으면 바로 결정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결단력을 이런 상황에서는 나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캠프 센터에 메일을 보냈다. 혹시라도 말로 전하다 오해가 생기면 안 되니까 메일을 보냈는데, 아무래도 아침 일찍이어서인지 답변이 없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이 오늘 아파서 하루 쉬겠다는 이야기를 하나 하는 것인데도 왜 이렇게 버벅거리고, 상대방 이야기는 잘 안 들리는지…… 무사히 의사 전달이 된 것을 확인한 후 전화를 끊고,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오늘은 하루 그냥 쉬자! 비도 많이 오고, 이대로 무리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쉬는 것이 낫겠어.”


이 결정이 아이들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이들도 말은 안 해도, 하루하루 일정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과 하루종일 집에서 무얼 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물론, 유튜브, 넷플릭스 시청으로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너무 많이 노출된 상태여서, 아이들에게 영국에 있을 동안은 토요일 영화 한 편 정도로 최소한으로 제한해 놓은 상태였다. 조금 풀어지면 또 남은 영국 생활동안 무한히 풀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차라리 몸이 조금 안 좋으면 침대에라도 누워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은 침대에 눕는 것도 싫어라 한다. 한국에서 올 때 책 한 권씩 가지고 와서 읽기로 했는데, 이미 그 책도 다 읽은 상태이다. 자연스럽게 내 아이패드로 향하는 둘째의 손……내가 살짝 눈빛을 보내니 화들짝 놀라 변명하기 시작한다.

“아니~ 엄마! 내가 유튜브 하려는 게 아니라! 나는 그냥 음악을 들으려는 거예요~ 음악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려고~~!”

그 음악을 틀겠다고 아이패드에서 눈을 못 떼는 그 모습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그래도 저 정도면 저들도 나름 인내하고 있는 것이겠거니 하고 잔소리를 내려놓는다.


큰애는 어제보다 몸이 조금 나아진 것인지, 어제는 누워서 낑낑거리더니 오늘은 누워있지만 심심한 탓인지 동생을 계속 건드린다. 그럼 또 둘째는 큰 소리로 울면서 나를 찾는다. 그리고는 둘 다 내게 엉긴다. 한국에서도 나에게 엉기는 편인 이 두 아이는, 영국에 와서 그 엉김이 더 심해졌다. 안다. 그들이 지금 의지할 어른은 나뿐이라는 것을…… 그래, 엉겨라 엉겨!


28년 전의 내가 생각난다. 영국의 보딩스쿨에 입학한 후, 학교에서 의지할 사람이 정말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이모, 이모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다 보니, 주말에 이모네 집에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이모부가 저녁에 다시 학교 기숙사로 보낼 때 그게 왜 그렇게 싫었는지…… 영국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가 내 마음을 더욱 울적하게 했다. 때로 힘들 때는 어른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떼를 써서 영국에 남게 된 것이니, 나는 그저 잘 지내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통화할 때면, 모든 것이 좋고, 모든 것을 잘하고 있다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다행인지 그때는 영상통화도 없었다. 국제전화 요금으로 동전이 무섭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이내 서로 잘 지내라고 안부만 확인한 후 전화를 끊었다. 부모가 옆에 존재한다는 것과 옆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리적 차이는 절대적이다.


그 생각을 떠올리면, 지금 이 아이들이 인지하는지와는 관계없이 나의 존재가 절대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만 좀 엉겨 붙었으면 싶다가도, 이 멀리 타국에서 엉겨 붙어있음 하나 만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을 이 아이들을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림도 그려보다가, 카드게임도 해 보다가, 책도 읽어보다가, 파이도 구워보다가, 그렇게 하루가 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감기기운이 많이 좋아졌는지 몸이 근질근질한 것 같다. 반면에 내가 지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도 오롯이 혼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캠프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찍 침대에 누워본다.

저녁 9시 30분경, 이제야 해가 지기 시작한다.

비 온 뒤 개인 하늘로 어스름프레 노을이 비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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