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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Jul 30. 2023

당신의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Psalm 23

7월 23일 (일)


큰 아이가 아프다는 것 때문에 걱정이 되어 내가 자는 더블침대에서 셋이 함께 잤다. 아무래도 이불을 차면서 자면 더 감기에 걸리는 것 같아, 잘 때 내가 이불을 계속 덮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이제는 아이들 덩치가 커서 그런지 더블침대에 같이 자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자다 보면 양 옆에서 나를 짓누르고 있어 그 무게에 힘겹게 깨어나 아이들을 옆으로 조금 밀어 본다.


아무래도 잠자리도 불편하고, 큰애가 아프다는 것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그랬는지 이상한 꿈을 꾸었다. 무슨 일인지 꿈속에서 영국일정 중 중간에 한국에 갔다가 오는 일정이 있었는데, 내가 실수로 한국 가는 편도 항공권만 예약해서 영국에 다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급하게 영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알아보다가 꿈이 깼다.


뒤숭숭한 꿈을 뒤로하고 아침 준비를 했다. 어젯밤 큰애가 아프다고 한 채로 잠에 들었기 때문에 아침은 푹 자게 두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어나기 조차 힘들어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집에서 다 같이 쉴까 하다가도, 잠깐 다녀오는 건데,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교차한다.

결국 다 같이 갈 채비를 하고, 택시를 불렀다. 오늘따라 택시가 잘 안 잡힌다. 늦을 것 같은데 그냥 포기할까? 계속되는 갈등 속에 예배시작 5분 전 택시가 드디어 잡혔다! 빠르면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 가는 것으로 강행했다. 택시기사님은 스페인 분이신 것 같다. 엄청난 빠른 스피드로 운전을 하시면서 뭐라고 하시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는 없고, 아무튼 쾌활하신 분이었다. 5분도 안 걸려 예배시간에 도착하시고는, 가시는 길에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Have a nice day, señor “라고 인사하시는데, 기분 좋은 인사다.


교회에 도착하니, 지난주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지난주에 만나 잠깐 인사를 나누었던 중국에서 온 냥키라는 자매가 차 서빙을 하고 있었다.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첼튼햄에 온 지 3년 되었다고 하였는데, 이 교회에서도 꽤나 중심축에서 봉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난주에 우리 아이들을 맡아주었던 벤 선생님도 인사를 해 주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맑은 미소는 전 세계 어디에나 동일한 것 같다. 요즘 교회에서도 그런 모습 보기 힘들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진심으로 믿음을 갖고 살려고 하는 한 두 명의 사람들이 있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결국 그분이 나에게 주시는 비전이라는 것은 큰 업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낯선 자에게 웃으며 인사를 베푸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지……


커피를 받아 들고, 아이들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이 교회 리더라고 하시는 (목사님인 줄 알았는데, 이분은 church leader라는 표현을 쓰신다.) 로져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우리를 안내해 주셨다. 인원수가 조금 적어 보이는 테이블로 안내하시며 우리를 그곳에 앉으라고 하였다. 그곳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루쓰와, 엄마뻘로 보이는 레이첼이 있었고,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 둘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수줍게 나에게 엉겨 붙었다.

“엄마, 오늘은 주일학교 안 한데?”

소곤거리며 둘째가 물어보았다.

나도 궁금해 옆자리의 루쓰에게 물어보았다.

“지난주와 예배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오늘은 어떻게 되는 거죠?”

“오, 지난주에 오셨었군요. 오늘 예배 형태는 조금 달라요,  여름방학 시즌이라서 주일학교 봉사할 사람들이 부족하기도 하고, 여름 시즌에는 다 같이 그룹별로 모여서 서로 이야기 나누고, 찬양하고, 리더가 말씀 전하고, 아이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로 진행이 돼요. “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때 내가 이곳 영국에 있을 때에도 교회 안에서의 커뮤니티 활동이 굉장히 활발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이모와 이모부가 섬겼던 작은 교회도 그러했고, 지금 이곳도 교인과의 교제와 나눔에 대한 비중이 훨씬 크다. 한국에서 섬기고 있는 교회의 예배 형식이 매우 전통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어떠한 예배의 형태이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오늘의 예배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 보기로 했다.


첫 찬양이 끝나고, 갑자기 예배 리더인 분이 테이블 위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자신이 두렵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보라고 했다.

두려움? 나의 두려움? 지금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의 병세이다. 정확이 말하자면, 큰 아이의 감기가 더 심해져서 기관지염, 폐렴까지 진행될까 봐 그것이 제일 두렵다. 한국에서야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있고, 쉽게 약도 처방받아서 나을 수 있는데, 여기에 가져온 감기약만으로 아이가 빨리 회복이 되어야 한다. 큰아이가 독감으로 입원한 적도 있어, 이곳에서 아이가 아프다고 하는 말이 지금 현재의 나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다.


‘Childres’s illness’


화이트보드에 적어보았다. 예배 리더가 각 테이블에 쓰여 있는 두려움들을 읽었다. 뱀, 거미, 모서리, 높이, 물, 등등 다양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나처럼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물론 그것들은 나에게도 두려운 것들이다.


예배 리더는 시펀 23편을 읽으며 다윗이 어떻게 두려움을 이겨냈는지를 이야기했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던 나는 주일학교에서도 숱하게 들어왔던 시편 23편이다. 그리고 예배 리더의 설교도 너무 간단하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너무나 당연한 내용들이었다.


‘다윗왕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었습니다.’


그 당연한 설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심하게 끄덕여졌다. 내가 지금 두려워하는 것, 아이의 아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으랴. 그저 낫게 해 주시기를 바랄 수밖에……


또 한 번의 찬양이 있었다. 이번 찬양은 바다 한가운데에 등대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경쾌한 리듬의 찬양이었다. 요즘은 한국에서 작사, 작곡된 복음성가도 많아, 해외의 복음성가가 오히려 생소할 때가 있다.


찬양이 끝난 후에는 테이블별로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다. 이런 시간이 나같이 처음 온 사람, 하물며 소수 인종의 영어도 잘 못하는 나에게 어색한 것은 너무 당연하고, 이곳에 계신 분들도 조금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우리는 각자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리더의 의도처럼 심도 있는 나눔이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서로의 어색함을 극복할 정도로는 딱 알맞은 정도의 주제인 것 같았다.


두려움에 대해 나눈 뒤, 다시 리더는 시편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 큰 것이라는 이야기. 우리가 막상 알고 나면 생각보다 별 일 아닐 수도 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내시는 분, 위험에서 피할 길로 인도하시는 분 이 시기 때문이다.


놀랍도록 간단명료한 설교였다. 내 감정에 대단한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에 내가 한층 더 의연해지고 담담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큰애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감기약을 먹였다. 그러고 보니 감기의 전조증상들이 있었는데 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나랑 비슷한 성격을 가진 큰애는 웬만큼 아파서는 참고 이야기를 안 한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내가 큰애를 안쓰럽게 쳐다보면 사랑을 갈구하는 둘째는 픽 하고 토라진다. 엄마라는 자리는 사랑을 받기도, 사랑을 하기도 버거운 자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게 또 엄마의 특권이기도 하다.


큰아이에게 뭐든 먹여본다. 한국에서 가져온 추어탕 팩이 이럴 때 요긴하다. 남편이 집어넣으라고 했을 때는 이걸 언제 먹겠냐고 했는데, 지금 우리 아이에게 몸보신으로 딱이다. 평소 같으면 이런 거 안 먹는다고 했을 텐데, 성실한 큰애는 저도 아픈 걸 이겨 보겠다고 엄마가 주는 걸 다 먹는다.


제발… 더 큰 병으로 번지지 않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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