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리카 Aug 01. 2023

아이가 해외 학교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7월 25일(화)


어제 하루동안의 쉼이 조금 효과를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큰 애의 상태는 확실히 조금 좋아진 것 같다. 그러나 기침도 하기 시작하고, 콧물도 나오기 시작하니 또 무리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마냥 쉴 수만은 없는 일. 오늘은 날씨도 화창하니 그래, 한번 결디어 보자! 열심히 운동하고 힘내서 체력을 길러보자!


오늘 점심은 조금 따뜻하게 싸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 내내 샌드위치로 싸 주었는데, 찬 음식을 먹는 게 역시 한국인의 감성으로는 맞지 않았나 보다. 밥심까지는 아니어도, 따뜻한 파스타로 싸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은 따뜻한 된장국에 밥으로 준비해 주었다. 한국에서는 점심은 학교에서 주니, 오히려 아침도 소홀히 먹였던 것 같고,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으니, 아프다고 이렇게까지 먹이는 것에 힘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 조금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 같다.


어제 하루종일 내린 비 때문일까?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상쾌한 것까지는 좋은데, 춥기까지 하다. 다시 오늘 보내야 하나 걱정이다. 그래도 하루 잘 버텨보자! 나도 힘들다!


아이들을 캠프에 들여보내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크게 한숨을 돌이키고, 그저 집에 가서 빨리 집청소하고 쉬고 싶은 생각만 든다. 바닥도 청소기로 밀고, 통창 열어서 환기도 시키고, 햇살 비치는 부엌에서 그동안 밀린 글도 쓰고, 블로그 정리도 하고 싶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내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아이들을 홀로 건사한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나 보다. 한국에서의 일들에 모든 신경을 끄고 오롯이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좋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책임을 홀로 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창문을 여니 상쾌한 공기가 밀려 들어온다. 조금 썰렁하기까지 하다. 한국에 돌아간 남편이 습도와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는데, 쾌적한 이 공기를 내년 여름에는 많이 그리워할 것 같다.

런던 여행이야기를 블로그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편을 쓰니 금방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되었다. 내가 그만큼 익숙해진 것인지, 이제는 아이들 오는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 어제 하루 쉰 큰애가 오늘은 조금 괜찮았을까? 또 걱정을 한 아름 안고 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아이들이 밝은 모습으로 나왔다. 3일 동안 집에만 갇혀 있었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오늘의 캠프가 매우 즐거웠던 것 같다. 큰애도 기침은 조금 하지만, 컨디션이 그렇게 많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둘째가 어쩐지 지난주 보다도 훨씬 더 신나 보인다.

“엄마, 엄마, 드디어 한국애가 왔어~~! 이번주에는 꼭 한국사람 있었으면 했는데, 나랑 나이도 동갑이고 mbti도 나랑 같이 ENFP야!! 걔랑 너무 비슷한 게 많은 거 있지~!! “

신나고 들떠서 떠드는 아이의 이야기에 마음이 덜컥했다!

물론 아이의 마음은 너무 이해한다. 한 주 동안 모습도 다른 여러 아이들 사이에서 친구를 찾아 헤매고, 나름 찾은 친구와 어렵사리 영어로 대화하는 게 스트레스였을 수 있다는. 공감할 것들이 없어서 대화에 한계가 있었을 것을! 그렇지만, 이 멀리 타국까지 온 이유 중 하나는 타문화 아이들과의 교류인데…… 막대한 돈을 쓰고 온 것에 대한 허탈함은 어쩔 수 없다.

물론, 해외에서, 특히나 이렇게 한국인은커녕 동양인도 보기 힘든 동네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의지가 되는 일인지는 잘 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조금 더 폭넓게 친구들과 대화를 했으면 좋겠는데, 우리 둘째의 성격상 자신이 좋고 마음에 들면 그만이기 때문에 엄마의 심리적 계산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다혜야, 물론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서 반갑고 좋은 것도 좋은데, 둘이서만 너무 붙어서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면 다른 아이들에게 실례야. 그렇게 되면, 다른 아이들이 너희들하고 친해지고 싶어도 이야기를 못 걸게 돼. 한국어로 할 때도 조금 작게 이야기하고, 다른 친구들하고도 같이 이야기하려고 해 봐.”

“왜 그게 실례야? 스페인 애들도 스페인어로만 이야기하고, 중국애들도 중국어 엄청 크게 해!”

어휴… 내가 너를 어떻게 이기겠니… 엄마가 하는 얘기는 다 꼰대 같겠지……


내가 십 대 시절, 자그마치 26년 전 이곳 Dean Close School에 다니고 있을 때만 해도 이런 시골학교에 한국인이 대여섯 명은 있었는데… 지금이라고 이곳에 한국인이 없을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게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이런 시골에서 한국인 딱 한 두 명씩 있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다. 차라리 한국인이 많은 곳이면 꼭 한국인끼리 안 다녀도 되는데, 한국인이 한 두 명인 곳에서 한국인끼리 뭉치지 않으면 그 안에서도 서로 이간질하고, 따돌리고, 더 어려워진다. 한국인이 한국인하고 안 놀려고 하면 한 마디로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당시 나를 돌보아 주셨던 이모와 이모부님이 늘 한국사람끼리 다니지 말라고 걱정하시면서 이야기하셨다. 그때의 이모님 마음이 지금의 딱 내 마음이다. 그런 것 보면, 이모는 진심으로 부모님처럼 나를 걱정해 주셨던 것 같다. 여기까지 와서 한국인들하고만 어울린다면 영어도 늘기 어렵고, 타문화 아이들과의 교류도 어렵게 되기 때문에 그리 말씀하셨던 것 같다. 나는 우리 둘째와 다르게 어른이 이야기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듣는 성격이어서, 현지 아이들은 물론, 일본, 홍콩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되었던 것을, 그때는 친구관계마저도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굳이 친구관계를 학습적인 이해관계로만 보아야 하는가 하고 마음을 열어본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한국인끼리 의지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끼리 더 친해지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어스피킹과 다문화체험만을 목적으로 친구를 골라 사귀어야 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우정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달갑지는 않지만, 둘째 아이가 마음 편하게 남은 3주간의 캠프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기뻐해 줘야겠지……


오늘 저녁은 제대로 아이들 몸보신을 해 주기 위해 통 닭을 푹 고았다. 삼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게 없으니, 마늘이라도 듬뿍 넣어 비슷한 맛을 내어 보았다.


큰 아이는 간간히 기침은 하지만, 학교 이야기를 하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졌다. 아무래도 지난주 태권도 시범을 보인게 몇몇 아이들에게 어필이 된 것 같다.

“엄마, 어떤 스페인 애가 자꾸 나한테 물어보는데, 자기는 노랑띠인데 나보고 무슨 띠냐고 물어봐. 그래서 블랙벨트라고 하고, 그중에서도 3품을 설명해 주려고 하는데, 3품 이야기하기도 전에 이미 블랙벨트라는 말 한마디 만으로 대단하다고 그러네. 그러면서 자기가 한국어로 숫자를 셀 수 있다고 하고, 나한테 스페인어를 가르쳐주려고 해.”

나름 자기도 뿌듯한지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나 있다.


그래, 까짓 거 영어만이 이번 여행의 목표는 아니니까! 다양한 아이들 속에서 함께 노는 것, 그 공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나는 열린 엄마다……영어만이 다가 아니다…… 괜찮아! 괜찮다니까! 여기 온 비용 따위 그만 생각해!





매거진의 이전글 우유부단한 엄마의 리더 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