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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Aug 12. 2023

갑자기 생겨난 배짱

그래! 까짓 거 운전해보는 거야!

8월 5일 (토)


애초에 이곳에서 운전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나는 많은 곳을 여행 다닐 욕심을 내려놓았다. 첫 주에는 남편과 아이들과 지겨울 정도로 런던 시내 관광을 매일 했고, 첼튼햄에서는 관광보다는 생활 중심의 한 달을 보내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이곳 코츠월드를 조금 더 보지 않으면 아무래도 후회할 것 같다. 아이들도 이제 슬슬 학교와 집만 오가는 삶이 지루한지 주말에 뭐 할 것인지 매일 물어본다.

“아니, 너네 런던에서 박물관, 미술관 다니는 거 힘들었다면서, 어디 들판에 나가는 것도 힘들어서 싫다며.”

“물론 그렇지요 어머니. 뭐, 굳이 어디 안 가도 돼요.”


말은 안 가도 좋다고 하는데, 슬슬 몸이 근질근질 해 질 때도 되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코츠월드 투어를 지난주에 예약해 두었었다. 대부분의 코츠월드 투어가 런던에서 출발해서 런던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첼튼햄에서 시작하는 투어를 찾기가 힘들었다. 투어를 찾을 때마다 드는 아쉬운 생각은 바로 ‘차’였다. 차만 있으면 운전하고 2~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바이버리, 버튼온 더워터 같은 유명한 코츠월드 투어사이트들이 있는데, 차가 없으니 바로 갈 수 있는 버스도 없도, 안 가보자니 아쉬웠다. 그래서 찾다가 에어비앤비에서 투어 예약을 했는데, 투어 비용이 세명 합쳐 무려 75만 원! 아깝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우리 가족만 프라이빗하게 할 수 있는 투어이고, 집 앞에서 픽업해, 집 앞까지 올 수 있다는 것도 편하고 긍정적인 생각들을 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한주 차를 빌리는 가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프라이빗 투어로 예약한 투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설마라는 생각이지만, 혹시라도 여자 혼자, 아이 둘, 게다가 아시아인! 범죄와 연관되지는 않을지 불안하기도 했다. 하도 흉흉한 세상이니, 혹시라도 주는 물이나 음식에 마약이라도 들었다면, 혹시 강금이라도 된다면?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일들이 머리에 떠 올라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본다.


꼭 이렇게 알쏭달쏭할 때, 답을 못 찾을 때 기도가 나온다.

‘이거, 조금 불안한데요. 어찌해야 할까요? 투어를 강행할까요? 여러모로 불안은 한데, 아이들한테 조금 더 이것저것 보여주고는 싶고요. 어쩌죠? 아고,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그날 날씨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날씨가 나쁘면 아닌 거고, 날씨가 좋으면 그냥 고 해도 되겠죠?‘

준비성 이라고는 없는 성격의 나는 결국 이런 식으로 결정을 미루고 만다.


그렇게 맞이한 오늘 아침!

빗소리가 거세다. 바람 소리도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와서 투어를 취소하면 환불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날씨에 도저히 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황급히 가이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날씨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는데, 갈 수 있을까요?’

가이드는 쿨하게 아이들 때문에 걱정이 된다면 취소할 수 있고, 전액 환불도 해주겠다고 한다.

가이드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그렇게라도 취소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투어가 취소가 되고 나니, 갑자기 투어 비용만큼 차를 빌릴 수 있겠다는 계산이 되었다. 어디서 갑자기 용기와 배짱이 생겼는지, 운전이 별거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20년 넘게 운전했는데, 여기서 뭐 어렵겠어?‘라는 자신감이 밀려왔다.

분명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왼쪽 오른쪽 다른 운전인 데다가, 낯선 곳에서 운전한다는 것을 손사래 쳤는데, 지금은 못할게 무어냐, 지금 안 하면 언제 하냐, 여기까지 올 용기는 있으면서, 운전할 용기는 없냐, 이런저런 명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까짓 거! 차 한번 빌려 보자! 렌터카를 검색하고 있자니 아이들이 극구 말린다.

“엄마! 이건 아닌 거 같아! 분명히 엄마 운전하면서 패닉 온다!”

“아니 왜~ 엄마 한국에서도 운전 잘하잖아!”

“어휴, 엄마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


아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에게 주차장 사용 가능여부까지 물어보았다.

그래, 이제 빌리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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