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리카 Aug 13. 2023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이유

꼭 힘들어야 기도하더라!

8월 6일(일)


어젯밤 렌터카 예약을 마치고 나니, 이곳에서 운전할 것이 은근 걱정이 되었나 보다. 꿈속에서 차를 운전하면서 한참 챌튼햄을 헤매다 갑자기 한국으로 길이 바뀌는 꿈을 꾸었다. 지금에라도 취소할까 싶다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용기가 마구 솟구쳤다. 마치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에 가겠다고 결정을 내린 후 예약행 버튼을 눌렀던 그때와 마음이 비슷하다.


분명 처음 영국에 올 때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차는 운전하지 않기로 했었다. 혹시라도 모를 사고 때문에 일정 전체를 망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영국생활을 한 달 정도 하다 보니 이제야 이곳 생활이 조금씩 보이고, 차만 있으면 금방 갈 거리를 늘 걷거나, 버스로 돌아가다 보니 조금 감질맛이 났다. 이제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도 들고……


한동안 이곳에 익숙해지고, 긴장감이 풀리니 나도 모르게 기도가 간절하지 않게 변하고 있었다. 영국 입국 초반에는 투어 하나 가는 것도 그렇게 긴장하고 무사하기를 기도했었는데, 이제는 아이들마저 캠프에 잘 적응하니 어련히 잘 다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란 인간, 늘 평온하면 기도를 놓친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과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잠언 14:4‘


부모님의 사업을 도왔던 지난 몇 년 간, 툭하면 터지는 사고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부모님이 사업을 정리했을 때는 그러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남들은 ‘그럼 뭐 할 거야.‘라는 질문을 숱하게 했는데,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가 좋았다. 덜 쓰고, 덜 모으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그럼 뭐 할 거야?‘라는 질문에 늘 쫓기고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학력 덕분에 이 나이에도‘방문교사’라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일이라도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했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사업할 때와는 다른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뭐라고 하는 사람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리를 추구하는 부모님은 이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늘 궁금해하셨다. ‘방문교사’ 일은 이후를 위한 과정으로 여기셨다. 그런 부모님에게 눈치를 봤던 것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 뭔가 번듯하게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일단 미술학원을 차리겠다고 부모님께 호기롭게 장담했다. 남편에게도 영국 다녀오면 학원 차려서 돈을 벌겠다고 큰소리쳤다.


막상 한국에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니, 내가 내뱉은 계획들을 수습하려 가야 한다는 생각에 점점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사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몸소 겪었기에, 다시 그것을 시작한다는 게 마음이 무겁다. 지금처럼 아무 생각도 안하도 마냥 아이들 챙기고,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삶이 너무 좋고,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차를 빌리기 시작하면서 다시 안전과, 평안을 간구하는 나의 모습을 보니, 역시 나란 인간은 무언가 힘든 일이 있어야만 기도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내 인생은 그렇게 계속 힘들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야 계속 기도하고, 간구하고, 말씀보고, 찬양하지……

무언가를 이루는 날이 올까? 완벽한 날이 올까? 온전한 평안함이 올까? 그렇지 않더라도 담담해지자. 어차피 결과는 나를 도우실 테니까. 그리고, 중간중간 이렇게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도 주시니까……


그런 마음으로 오늘 예배에 참석했다. 벌써 한 달째 참석하는 영국의 이 작은 마을 교회의 매주 새로운 진행 방식이 생소하지만, 그 안에서도 깜짝 놀랄 만큼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신다.

오늘은 두 개의 장난감 집을 갖고 설교를 했다. 돌 위에 있는 집, 모래 위에 있는 집. 실제로 교단 위에서 물을 붓는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설교방식에 깜짝 놀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저 단단한 반석이다.’라고 하시는 짧은 메시지가 이렇게 나에게 정확하게 말씀하시다니! 오늘 아침까지 고민했던 귀국 후의 나의 삶.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사업을 하면서 어렵고 힘든 일을 겪어도 내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그 말씀!


영국행을 오면서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해 주실 응답이었다. 역시나 어떤 음성이 아니더라도, 어떤 충격적인 경험이 아니더라도, 어떤 뜨거운 감동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나는 알 수 있다. 이것이 나에게 주시는 인도하심이고, 응답이시라는 것을……


이제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각자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 이제 그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오늘의 아이들과 웃는 이 하루가 너무나……



매거진의 이전글 갑자기 생겨난 배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