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줌마냐 글로벌 호갱이냐!
8월 7일(월요일)
오래전부터 나는 블로그에 여행후기를 올리고 있다. 여행 후기의 제목은 ‘글로벌 호갱의 00 여행’이다. (깨알 피알 무엇?) 처음 시작한 것은 5년 전 아이들과 함께 보름간의 여행 후기였다. 한국에서도 그다지 할 말 잘 못하고 살아서 손해를 보는 타입인데, 해외에 가서도 그런 성격이 전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짧은 언어와, 외모에 따른 기죽음 때문에 더 많이 당하고 오는 경우가 있다. 또, 치밀하지 못한 성격 탓에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다니다 보니, 최고 효율과 최저가를 추구하는 여행블로거들과는 달리, 어떻게 호구가 되고, 어떻게 바가지를 쓰는지 진솔하게 보여주게 되었다.
이렇게 자타공인 글로벌 호갱이지만, 나름 한국에서 사업도 해 봤고, K-아줌마 경력 14년 차에 접어드니, 그냥 당하고만 싶지 않은 오기가 생긴다. 물론 실속도 못 찾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님 말고’ 정신으로 한 번이라도 더 물어보자는 강단이 조금 자라난 것 같다.
영국에 오기 전, 내가 해외로 장기 나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속세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복잡한 삶에서 한동안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나는 그것을 만족할 만큼 이루었다. 잔고만 여유 있게 있으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어 보였다. 여행자로서의 한 달을 보내며, 모든 거리들이 아름다워 보였고, 모든 풍경들이 감동이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며 어느덧 거리의 모든 풍경이 일상처럼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감흥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간간히 남편이 톡으로 한국의 풍경을 보내올 때면, 이렇게 모던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었나 하고 감탄하게 되기도 했다. 점점 나의 여행은 생활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활로의 변화는 작은 것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국에 온 후 바로 유심을 샀었는데, 한 달짜리 100기가 번들을 샀었다. 그때부터 글로벌 호갱 인증이 시작되었다. 더 싸고 좋은 유심도 있었는데, 왜 굳이 그런 유심을 샀던 것인지……
문제는 한 달이 지나고, 이걸 연장을 해야 하는데 앱으로 연장을 하려니 한국 카드가 결제가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미리 금액을 입금해야겠다는 생각에 오프라인 매장에 찾아갔다. 만료 기일 이후에 연장하고 싶으니, 금액을 결제해 달라고 했고, 직원은 바로 처리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만료일이 지났는데 잔액이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문자가 왔다. 이상해서 앱을 보니 내가 입금한 10파운드가 어느새 3파운드로 줄어 있었다. 고객응대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도통 전화연결 자체가 안 되었다. 이럴 땐 전 세계 어디나 통신사 고객센터는 연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빠른 일처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하는 수 없이 시내의 통신사 매장까지 찾아가기로 했다. 시내까지 걷는 거리는 약 20분 거리…… 그렇게 아름답고, 힐링되던 그 거리가 짜증 나고, 불안한 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내일 차도 빌리기로 했는데, 휴대폰 데이터 문제가 해결 안 되면 네비도 쓸 수 없고,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기 때문에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까짓 거 안되면 10파운드 손해 봤다고 생각하고, 다른 통신사 유심으로 갈아 끼우면 돼! 별일 아니야! 일주일 밖에 안 남았는데, 마음의 여유를 찾고, 좋은 기억만 갖고 가자!’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통신사 매장에 들어가, 그날 10파운드 결제를 한 직원에게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러니, 내가 입금한 그날부터 데이터 사용이 계산되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돼! 100기가 번들 기간이 3일 정도 남은 시점이었는데, 그 데이터는 거의 쓰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니, 그렇게 시스템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둘러대더니 고객응대센터에 직접 전화하라고 한다. 고객 응대 매뉴얼도 어쩜 그렇게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지!
“고객응대센터 연결이 너무 안 된다. 너희가 디렉트로 전화해 물어봐 줄 수 없느냐! “
”그게, 안되게 되어있어. 미안. 고객응대센터에서 잘 해결해 줄 거야. “
‘와… 진짜. 너무하네. 내가 글로벌 호갱이 맞긴 하지만. K-아줌마가 뭔지 보여줄까? 진짜 제대로 진상 부려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결국 순순히 고객응대센터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연결이 안 된다. 직원들도 저 아시아 아줌마를 어떻게 쫓아낼까 고민 중인 듯하다. 25분에 다다르자 연결이 되었다!
나의 상황을 열심히 설명했다. 되는 영어 안 되는 영어 막 사용하였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에너지가 가슴속에서 솟구쳐 방언이 터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쪽에서는 끝끝내 환불은 안되고, 10파운드 번들로 바꾸려면 다시 10파운드를 결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결국, K-아줌마냐 글로벌 호갱이냐의 기로에서 나는 글로벌호갱을 택했다.
알겠다고 전화를 끊은 후, 해당 통신사를 나와 바로 옆 통신사에서 보란 듯이 새로운 유심을 사다 끼웠다. 훨씬 저렴하고 잘 터지는 유심인데, 왜 진작 이쪽 통신사로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부러워했던 해외살이가 결코 SNS에서 보는 것처럼 즐겁고 화려하지많은 않은 현실이구나 라는 깨달음에 다다른다. 한국을 벗어나도 어느 곳이든 여행이 생활로 바뀌면 그것은 만만치 않은 삶이 된다. 마지막 한주, 끝까지 여행자 모드로 이곳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갖고 가자. 그래, 이제는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 글로벌 호갱의 여행이야기 : https://m.blog.naver.com/enju5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