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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Nov 01. 2023

알고리즘이 너무해

‘부르르’

책상 위에 있던 스마트폰의 짧은 진동이 스쳐 지나간다. 아마도 광고앱의 알림이거나, 누군가가 SNS에 피드를 올렸다거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알림들이 스마트폰에 어지럽게 쌓여 있을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알림 지우기를 싹 다 했음에도 여전히 때때로 알림이 울려온다. 습관적으로 늘 앱을 정리해 두고, 불필요한 알림은 지우는 편인데도 애플리케이션 업데이트는 집요하기만 하다.


일일이 앱마다 들어가서 확인하고 설정을 바꾸는 것도 귀찮다고 툴툴거렸던 그에게 스마트폰 홈 화면 좀 정리하라고 잔소리했던 하루하루의 일상이 이제는 내 머릿속에 두둥실 떠다니며 마치 가슴 한가운데가 무중력 상태가 된 것 같다.


째깍째깍, 고요한 방 안에서 시간의 흐름은 정적을 깨고 묵묵히 제 갈길을 간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아들 하준이가 돌아온다. 하준이가 오기 전에 이 묵직한 공기를 깨 보기 위해 몸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고,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시간을 본다.


‘Sehyeon Lee님이 게시글에 글을 남겼습니다.’


페이스북 알림에 그 이름을 보자 허공에 떠다니던 나의 심장이 땅바닥으로 내리 꽂히는 기분이 들며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지? 내가 세현이 계정을 계속 친구로 유지했었었나?’

어차피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 페이스북 계정을 진작 지웠어야 했는데, 그나마 사회에 연결된 끈이라고 놓지 않고 있었더니, 보고 싶지 않은 친구들의 소식도 접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현이 소식이라니…… 별로 알고 싶지 않지만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현이 역시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올리는 편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어 있는 줄도 몰랐다. 아마도 내 이메일 주소록이나, 전화번호 기록을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멋대로 끌어다가 내 친구로 모두에게 추천을 해 준 덕분이겠지……

평상시에 피드를 잘 올리지 않던 세현이 올리는 피드라면 무언가 자랑할 만한 큰 사건이겠지? 결혼 소식을 들은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그럼 무슨 일인 거지?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결국 세현이의 게시글을 눌러보았다.


‘사랑하는 그이 자랑스럽습니다.‘

어느 기사 링크와 함께 세현이의 짧은 멘트가 게시된 글이었다. 링크된 기사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눌러보았다. 링크는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의 기사 링크였다. 젊은 벤처사업가들을 시리즈로 소개하는 글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알아볼 수 있다. 그의 얼굴이다.


호들갑스러운 댓글들이 여럿 보인다.

‘어머! 영대오빠 멋지다.’

‘세현이 내조의 여왕이네~ 축하해!’

‘어머, 지지배, 오랫동안 소식이 뜸하더니, 이렇게 한 방 날리는 거야? 부럽다!‘


그리고, 그 댓글들에 대댓을 단 세현이의 멘트들. 그녀 특유의 겸손한 듯한 말투는 여전히 거슬린다.

‘우리 오빠 멋지지? 기도 많이 해줘!’

‘내조의 여왕은요~ 아침도 잘 못 챙겨주는 불량 아내입니다. ㅎㅎ’

‘부럽긴… 어쩌다 구멍가게 신문에 기사 난 것뿐이라. 아직 갈길이 멀어~ 기도 많이 해줘~’


SNS계정을 진작에 삭제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삭제 버튼을 눌러 삭제를 시도한다. 페이스북 앱을 길게 누르니 앱이 흔들린다. 내 마음처럼…


’삑삑 삑삑 삑, 띠리릭~‘


“엄마“

하준이가 들어온다. 얼른 스마트폰을 뒤집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어, 하준이 왔구나, 오늘은 별일 없었니? “

하준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간다. 아빠가 떠난 이후로 줄곧 저런 모습이다. 분명 아이 스스로의 마음속에는 큰 폭풍이 일고 있겠지만 큰 사건 하나 일으키지 않고 잘 견뎌주는 아이가 고마울 따름이다.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가 빨리 온다고 하는데,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하준이 의 마음속 폭풍이 곧 더 심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방에 들어가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을 시작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엄하게 단속하였는데, 이제는 나에게 그럴 기력도 남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아이에게 저녁을 차려주고는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요즘의 나의 상태이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 문득 스마트폰의 검색앱을 열어본다.


‘조영대 CEO‘


인물란에 여러 명의 조영대가 검색되어 나온다. 그중 한 사람의 얼굴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 조영대 일본 리포레스트(주)대표이사. 2023 니혼게이자이신문 선정 올해의 젊은 벤처사업가 10인 중 하나로 선정되었음.‘


다시 검색창에 ‘리포레스트(주)’를 검색해 보았다. 한국의 매체에도 몇 군데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재일동포 3세, 벤처 사업가. 살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던 부모님 세대와 달리, 조금 더 의미 있는 기업을 이루어 보겠다고 시작한 벤처사업. 늘어나는 빈집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컨설팅하고 기업과 매칭하는 일종의 중개사업의 일환인 듯하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늘어날 고령자와 지방 공동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이 기업을 주목하고 있는 듯했다.


그 다운 발상이다. 어떠한 사회적 문제든 그 근본적인 문제부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였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위장이혼도 이혼은 이혼인데, 이혼녀가 옛 애인을 검색하고 있는 모양이라니……하물며 친구의 남편인 사람을…


‘정말 한심하다.’


다시 한쪽으로 스마트폰을 치워놓고 무기력하게 얼굴을 묻어본다.


‘달그락’


그릇을 치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하준이가 다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올려놓는 소리인 듯하다.

하준이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고개를 들어 하준이의 상태를 확인한다. 다시 스마트폰을 집으려는 하준이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화들짝 놀란 아이는 몇 초간 나를 응시하더니 가방을 열어 공책과 책을 꺼낸다.


“숙제할게.”


내가 그동안 아이에게 얼마나 윽박질렀으면,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하냐고 다그쳤으면, 아이는 나보다 더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왈칵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서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미안, 하준아. 엄마가 미안, 지금은 도무지 힘이 나지를 않아.’


’부르르르르 부르르르르‘

스마트폰 진동이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주기적인 진동. 이번에는 알림이 아니다.


‘발신자 번호 제한’


그이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받지 않으면 또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른다.


‘부르르르르 부르르르르’

계속되는 진동에 하준이 나를 쳐다본다.

“엄마, 전화.”

멍하니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나를 쳐다보던 하준이는 아빠한테 온 전화라는 것을 직감한 듯이 급히 내 손에 있는 스마트폰을 낚아챈다.


“아빠! 아빠!”

분명 수화기 너머 그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하준이는 가만히 아빠의 음성을 듣고 있다. 어느덧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응. 알았어. 엄마 말 잘 듣고 있어요. 아빠 보고 싶어요. 응. 응…… 알았어요. 엄마 바꿀게요. “

하준이가 건네는 스마트폰을 들어 귀로 가져간다.


“나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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