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아침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쌀쌀하다. 겉옷을 걸치고 음악을 켜며, 따뜻한 커피를 내려본다.
커피 한 모금에 온기가 전해지니 음악이 가슴에 젖어든다. 안개가 내려앉은 유리창 너머로 멀지 않은 들판이 보인다. 몇 해 전 심은 언덕 위의 구절초가 하얗게 옷을 갈아입었다. 마치 어깨동무한 듯 언덕을 감싸 안은 모습으로 음악에 맞추어 입을 모아 잔잔한 합창을 하는 것 같다.
가을이다.
커피를 또 한 모금 머금고 정원을 바라보니 정원 앞 연잎은 어느새 짙은 초록색을 감추고 연노랑과 갈색의 중간색을 보이면서 나를 향해있다. 아침 인사구나.!
초록색 연잎이 갈색으로 바뀌는 수가 늘어날수록 해가 늦장을 부리고 있음을 느낀다.
해가 뜨는 시각이 늦어지지만, 몸의 시간은 빨라지고 있다는 것도 느껴진다.
어느 해 여름이었던가? 이른 아침에 이슬 머금은 하얀 봉우리 연꽃을 두 손에 머금은 듯, 들고 와 우리를
깨웠던 사람이 있었다. 작은 옹기 단지에 담아 신기한 것을 보여준다고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
아이처럼 들떠 있던 표정은 연꽃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난다.
봉우리였던 연꽃은 따듯한 물을 부어주니 항아리 속에서 낮장을 펴며 은은한 향을 전하여 주었다.
연꽃의 은은한 향은 나를 아니 우리를 기분 좋게 하였었다. 흔적이다.
오늘을 사는 나는, 연꽃보다 연잎을 좋아한다. 연꽃은 잠깐 피고 잎은 오래 남는다.
함께하는 과거는 지나갔고 현실이 아니기에 내가 쓰는 인생에 더 의미를 둔다. 갑자기 비가 오면 큰 연잎을
따서 씩씩하게 머리에 쓰고 비를 피하며, 작고 연한 연잎은 연 씨를 넣어 오로지 나를 위한 연밥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씨앗이 발아하여 잎이 성장하면서 물속에 있던 연잎이 꽃대를 뽐내며 물 밖으로 올라온다.
커다란 연잎을 보이며 올라올 때는 기다리는 것도 좋았었다. 커피가 달다.
집 앞으로 아침 기차가 조용한 적막을 깨며 “우우~우~웅” 하며 나름 매너를 지키며 느리게 지나가고 있다.
아쉬운 커피가 마지막 한 모금 남았다.
따뜻한 커피의 향이 마음을 자극하니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는 몸의 시계이다.
마당 앞 연잎이 갈색의 잎으로 사라지고 말라 가면서 물을 향해 고개를 숙이면, 계절은 겨울을 향해 가고 있다는 신호다. 같은 자리 같은 커피를 마시며 조금씩 움직이는 자연을 볼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커피의 타임머신은 어느새 항아리 위에 수북하게 내려앉은 하얀 아침에 데려다 놓았다.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은 차갑다.
나의 집 앞마당은 병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