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청산도

by 무지개

새벽 일찍 출발한 청산도행 관광버스를 탔다

예정에 없던 여행이었다.

여행을 예약했던 분이 불참하게 되어 친구의 호출로

무료 여행이 되었다. 버스에 타자 마자

5학년 6학년 출석을 체크하는 가이드의 입담

"6학년은 5학년 인척 하면서 5학년 옆에 바짝 붙어 다니쇼" 모두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들뜬 목소리로 "네~"하고 합창을 했다. 나는 5학년 경계점 아직은 요주의 인물은 아니다.


이른 새벽 기상으로 졸린 눈을 감고 창벽에 몸을 기대고 잠을 청했다. 창밖은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한 시간쯤 달리다 보니 어두웠던 버스가 밝아졌다. "곡성 휴게소가 마지막이니 볼일들 보고 오이소. 그라고 15분을 줄 터이니 차번호 잘 보고 후딱 볼일만 보고 오이소" 가이드의 말을 뒤로하고 모두 휴게소에 내렸다. 볼일을 보고 출발을 하려 하니 6학년말의 어느 분이 타지 않았다. 가이드가 출석을 불렀다. 완도에서 배를 이용하여 청산도를 가야 하는데 배 시간에 맞추지 못할까 봐 5학년 옆 짝꿍이 데리려 가고 소동이 벌어졌다. 10분쯤 지났을까? 6학년과 5학년이 함께 버스에 탑승했다. 휴게소 화장실이 밀려서 다른 건물로 볼일을 보러 갔다가 관광버스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수학여행을 갈 때 가끔씩 돌발 행동으로 선생님을 놀라게 한 친구가 생각났다


"이제 국도를 두 시간 달릴 것이므로 맘 푹 놓고 주무시쇼잉" 전라남도 구수한 말로 안내하는 가이드의 말과 함께 버스 안이 어두워졌다. 잠을 청하려 하였으나 눈이 감기지 않았다. 내 옆의 6학년의 언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챙겨주었다. 다양한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섞여 낯선 관광버스의 공기를 느꼈다. 어릴 적 수학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처럼 어느새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있었다.


두 시간을 달리니 거리에 김과 전복이 자판에 깔려있는 완도에 도착했다. 코끝으로 느낀 비릿한 바다내음도 낯설지 않았다. 생선을 파는 억양이 강한 섬사람들의 어투와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석유 냄새가 선착장임을 알게 하였다. 가이드는 젊은 5학년인 우리 팀에게 다가와 "누님들, 제가 배표를 끊을랑께 후딱 가서 맨 앞줄에 서 계시쇼잉" 하자 눈치가 빠른 친구가 수백 명이 타면 자리가 없으니 자리 확보를 위해 여객선을 향해 냅다 달렸다. 그 친구는 창가를 둘러앉아야 된다고 하였다. 나도 모르게 그 친구의 흐름에 맞추고 있었다. 승선표를 끊고 온 가이드는 우리 모두에게 빨간색 하트 머리핀을 전하며 여행이 끝날 때까지 머리에 착용하라고 하였다. 많은 관광객들과 섞이면 구별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어색하여 머리핀을 주머니에 넣고 배를 탔다. 배를 타니 우리 팀이 누군지 알 수 없고 가이드가 들고 있는 깃발만 바라보며 나는 슬며시 머리핀을 착용하였다.


선실 안에 들어오자 친구는 준비한 간식들을 꺼내며 6학년 언니들에게 권하였다. 엉겁결에 빈 몸으로 온 나는 친구가 건네준 오징어를 뜯으며 창에 기대고 앉았다. 밖에는 보슬보슬 봄비가 오고 있었다. 파도를 가르며 바다에 떨어지는 빗물을 감상하다가 따뜻한 선실에서 잠이 들었다. 50분쯤 흘렀을까 가이드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누님들 사람들이 다 내리면 움직이쇼 놔두고 안 갈랑께" 하며 놓여 있던 깃발을 들었다. "그라고 내릴 때 6학년 언냐들은 비가 와서 미끄렁게 찬찬히 바닥 보고 내리쇼잉" 하며 또다시 당부를 했다.


모두 내린 후 우리는 예약된 식당으로 우산을 들고 걸어갔다. 횟집들이 즐비한 거리를 걸으며 가이드가 안내한 식당으로 가니 해삼물과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신선한 회와 밥을 든든히 먹고 가이드는 3시간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친구와 6명이 한 팀이 되어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서편제 길을 걸었다. 계단을 오르며 한참을 걸으니 넓은 들판양쪽으로 만발한 유채꽃들이 보였다. 비에 젖은 유채꽃들은 은은한 향기가 되어 발걸음을 느리게 걷도록 도와주었다. 바다를 멀리 둔 언덕을 넘으며 구부려진 길을 걸을 때쯤 '진도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음악과 함께 유채꽃 사이로 펼쳐진 바다는 나의 고향을 또다시 떠오르게 하였다. "아리 아리랑 스리스리랑 ~~ 아라리가 났네 " 나도 모르게 어깨춤에 덩실덩실 춤을 추게 하였다. 돌아보니 그 언덕을 넘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우리 국민은 태어날 때부터 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몇 킬로를 더 걷다 보니 팀 언니 중에 다리가 아파서 걸을 수 없다 하여 우리는 순환버스를 탔다. 순환버스를 타고 청산도 마을 풍경과 농촌의 모습을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마을은 작은 제주도를 연상하게 하기도 했다. 순환버스를 타며 아쉬운 점은 청산도 관광객이 많은데 안내 맨트가 없어서 청산도 섬의 설명을 들을 수 없어 일반 마을버스처럼 마을 곳곳을 눈으로만 보았다. 30분쯤 돌던 순환 버스는 종착점인 선착장에 도착하니 비는 그치고 바닷바람이 차가웠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부둣가에서 언니들이 사준 해물과 회를 먹으며 서로의 어색함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말없이 구름 낀 바다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그 예전 관광버스에 몸을 싫고서 중년의 문턱을 넘으며 어깨춤 덩실 추던 노인이 되어가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넘실 거리던 파도와 유채꽃 향기는 나에게도 노년의 모습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한 청산도 여행의 경험이었다.

추위를 피해 다방 대신 커피숍에 앉아 약속된 배 시간을 기다리며 11개의 슬로길중 걷지 못한 10개의 길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구름 낀 하늘을 보며 올해가 가기 전 가을에 코스모스가 피면 1박 2일로 또다시 찾아오리라고 다짐하면서 청산도에 미련을 남기고 떠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