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가 첫 예고를 시작할 때만 해도 관심있게 볼 거란 기대는 들지 않았습니다.
전후 가난한 시대, 없이 살던 애처로움을 보여주는 드라마인가 싶었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관식의 할머니는 애순의 딸을 해녀로 만들려 굿상을 차립니다.
애순은 절을 하는 대신 굿상을 엎어버립니다.
그 대가로 시댁을 나와 끼니를 걱정하는 삶을 삽니다.
드라마 설정이지만 현실적으로 며느리가 상을 엎는 행위는 엄청난 대사건입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지금 이 시대에도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육지의 공장에서 일하거나 해녀가 되는 선택지밖에 없는 운명에서 막례는 애순을, 애순은 금명이를 지켜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 모든 어머니가 그런 선택을 한 건 아닙니다.
특이하게 보았던 점은 '자전거'입니다.
당시 애순은 '금명이 상을 차리는 사람이 아니라 상을 엎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자전거'를 사달라 합니다.
'왜 자전거일까?'
페달을 밟고 손잡이를 쥐고 직접 운전해야 하는 자전거는 대다수가 당연하다 여기는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상징으로 보입니다.
애순이 똑똑한 점은 시집살이의 힘겨운 날들 속에서도 이를 간파하고 기어이 쟁취해 냈다는 점입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누구나 다 상을 엎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그 정도의 파격적인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닌 건 아니다'라는 매서운 결심이 있어야 생의 아름다움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젊을 때라 가능한 이야기지'
물러설 이유는 없습니다.
물리적인 상을 엎을 일은 없겠지만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년에게 그만큼의 큰 결단과 실행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새로운 삶을 운전해 갈 '마음속의 자전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