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독서법이나 글쓰기 책을 보면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권하는 말은 '많이 읽어라'입니다.
잠시 후에 '무조건 많이 읽는다고 좋은 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많이 읽으면서 무조건 많이 읽는 게 좋지 않다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집중할 수 있는 자원은 유한합니다.
여유가 있어도 마냥 책만 읽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독의 기준이 따로 있을 리 없습니다.
지금까지 총 읽은 권수일까요?
1000권? 5000권? 10,000권?
한 달에 읽는 권수일까요?
15권? 20권? 25권?
하루에 읽는 양일까요?
100페이지? 200페이지? 300페이지?
이런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독을 추구합니다.
多讀은 '많이 읽음'입니다.
그리고 남독을 추구합니다.
濫讀은 '책의 내용이나 수준 따위를 가리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마구 읽음'입니다.
양질 전환의 법칙, '매일 양적 성장을 축척하면 어느 순간 질적 성장의 비약이 일어난다'를 믿습니다.
생각해 보면 다독이든 남독이든 얼마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독가라는 표현이 쓰입니다.
많이 읽는다고 좋은 건 아니라는 말은 완독한 책의 권수를 올리기 위해 제대로 읽지 않고 넘어가는 짓을 경계하기 위한 말일 겁니다.
한 권을 읽어도 그 안에서 하나라도 배울 것을 찾아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의미겠죠.
다독과 제대로 읽기, 둘 다를 가지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다독하면서 남독하면서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요?
욕심은 앞서고 실천은 더뎌갑니다.
잠시 흔들립니다.
'지적 성장'이라는 큰 목표를 되새기고 독서발걸음을 다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