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소외와 즐거움의 소외

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by 생각하는 프니

"즐겁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자기가 소외된 일을 간신히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조용한 시간에 더욱 자기 소외를 하는 셈이다.

연쇄적인 자기 소외가 일어나는 나날이 계속되는 것이다."

(<<철학자의 질문>>중 p75,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전경아 옮김, 토트)


'노동소외'란 단어는 칼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유명해진 개념이고 이후 많은 다른 철학자들이 인용하는 말입니다.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에서 소외되고(자본가의 소유이므로),

노동과정(생산행위자체)에서 소외되고(강제된 노동),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소외됩니다.(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함)


'즐거움의 소외'라는 개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파티, 테마파크, 인터넷 게임에서의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수동적입니다.

비싼 값(시간 포함)을 지불합니다.

교묘하게 연출된, 거짓 공포와 위험을 맛보게 하는 억지 자극입니다.


우리는 일에서는 노동 소외를, 일상에서는 즐거움의 소외를 겪습니다.

그래서 번아웃이 오는 걸까요?


인생의 가장 적절한 정답은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에서 직업적 성취를 얻고, 진정한 즐거움을 획득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일입니다.

하지만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태반이라 욕망과 현실이 괴리는 점점 커져만 갑니다.


"'지금을 살아라'는 몽상 속에 떠 있는 가치를 믿지 말고 지금 이 손안에 있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살라는 말이다."

(같은 책 p165)

현실에 서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어떤 상황이든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먼 미래의 나만 바라보느라 현재의 나를 놓치면 안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