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독일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망각그래프'는 유명한 실험입니다.
아무렇게나 조합한 수천 개의 단어를 무작정 외우는 실험을 직접 실행합니다.
사람들이 정보를 잊어버리는 속도를 측정한 건데요.
실험 결과 학습 후 20분이 지나면 절반을, 하루가 지나면 3분의 2를 잊어버렸습니다.
의욕을 가지고 학습에 매진한 결과가 이 정도라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주변 상황을 머릿속에 제대로 담아둔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릅니다.
우스갯소리로 '어제 점심에 무얼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이걸 기억할 수 있겠니?'라고 말하는 것도 충분히 공감 가는 소리입니다.
원시시대 이후로 인간의 기억이란 생존을 위한 핵심 요소입니다.
독이 있는 식물이나 곤충을 가려내야 하고, 늪이 있는 곳을 피해야 하며, 아기 호랑이가 있다면 근처에 아주 예민한 어미 호랑이가 있으니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등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잊어버린다면 자연의 생태계에 밀려 사라졌을 겁니다.
하루를 돌아봅니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짚어보는 중에 긴가민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침에 5시 10분에 깼는지 5시 40분에 일어났는지, 아침을 먹었는지 먹었다면 무얼 먹었는지 헷갈립니다.
그 이유는 어제와 그제와 오늘이 거의 똑같은 일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기억해야 할 것과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 즉 망각해야 할 정보를 엄격히 구분합니다.
그래서 비슷한 일상은 즉시 압축해 버립니다.
아침에 일어나다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특별한(?) 상황이 있지 않은 한은 기억에 남겨두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 한 달, 반년의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버립니다.
그 시간들을 몇 개의 문장으로 압축해 버릴 수 있는 삶입니다.
올해 남은 시간들을 세어봅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 뿌듯하게 성장하는 시간들로 채우기 위해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작은 이벤트들을 만들어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