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손전등의 빛이 그 자신을 비출 수는 없다.... 빛을 내뿜는 전구는 자신을 향해 비추는 일은 불가능하다... 손전등은 이리저리 비추는 동안 손전등 자체는 결코 인식되지 않는다. 나는 결코 '나'를 알아차릴 수 없다... '나'를 찾으려는 시도는 마치 바닷물 속에서 물을 찾으려는 것과 같다."
(<< 나는 내 생각을 다 믿지 않기로 했다>> 중 p209-210), 홍승주 지음, 다산북스)
손전등의 빛이 향하는 곳에는 나의 생각, 감정, 감각, 행동이 있습니다. 생각을 예로 들어볼까요? '나는 부족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나 = 부족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내가 가진 많은 할 줄 아는 것 중에 어느 한 부분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가 부족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뭔가 실수를 했거나 해야 될 것을 하지 않아 현재가 엉망진창인 사람은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존재자체가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남의 이야기라서 그럴려니 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의외로 우리는 이런 부정감정에 휩싸여 스스로를 부정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손전등을 들고 있어야 합니다. 손전등을 들고 있으려면 나는 생각, 감정, 감각, 행동의 바깥에 서 있어야 합니다. 부정 기분을 일으킨 한 부분에 손전등을 비추고 관찰해야 합니다. 침울하고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한 감정을 느낀다면 잠시 떨어져서 그 감정을 향해 손전등을 비춥니다. 느껴지는 모든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걸 받아들인다고 해서 지금 당장 내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닙니다. 그냥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하는 정도입니다. 즉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한다고 해서 손전등을 들고 있는 나 자신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손전등을 떨어뜨리고 그 감정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 감정, 감각, 행동을 무조건 없애버리려 하거나 없는 것처럼 억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과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일입니다. 거리를 두게 되면 좋은 점이 나와 부정생각 사이에 공간이 생깁니다. 그 공간은 나를 숨 쉬게 하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즉 회복탄력성이 높아집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좌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좌절했음에도 꾸준히 꿈을 향해 다시 걸어간 사람입니다. 부정감정은 느닷없이, 갑자기, 뜬금없이 언제든지 찾아오는 방해물입니다. 방해물 때문에 가야 할 길을 못 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꾸준히 한 걸음 한걸음 앞을 향해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