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 받았으나 선택받지 못한

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by 생각하는 프니

"자신의 열망을 투사하는 자식을 통해.. 그가 꾸는 미래란 꿈이 그의 현재를 갉아먹는다... 지연된 쾌락... 나중이란 다른 말로 하면 종종 너무 늦었을 때, 즉 삶에 너무 예금을 많이 선불해서 그 '원금'을 거둘 시간이 없고 '바라는 것을 버려야'한다."

(<<구별 짓기 下>> 중 p641,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새물결)


피에르 부르디외는 프랑스 사회를 세 계급으로 나눕니다. 부르주아(지배계급, 상속된 귀족), 쁘띠 부르주아(중간계급) 그리고 민중계급입니다.


중간계급은 상승지향의 욕망을 위해 내달리면서 민중계급으로의 추락을 두려워하며 불안해합니다.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 부족한 이들은 학교제도를 통해 계층 상승을 꿈꿉니다. 자식은 그가 꿈꾸는 '또 다른 자기'이자 꿈을 이뤄줄 대리인입니다.


1979년에 출간된 책인데 2025년의 현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지만 남는 것은 회한 뿐이라는 말은 나름 공감하는 대목입입니다. 부르디외는 중간계급을 '부름 받았으나 선택받지는 못한'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관계자본을 모두 가진 자를 부르주아(지배계급)이라고 부르는 데요. 부르주아로 향하는 문은 매우 좁습니다. 이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를 작게 만들어야 한다는 표현이 와닿습니다.


다 가진 부르주아는 과시와 낭비가 일상이고 세계와 자신의 관계에 확신이 있습니다. 때문에 건방질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쁘띠 부르주아지는 상승지향의 엄격한 의지주의를 실천하기 때문에 절약정신, 진지함,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대신에 타인의 시선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인생을 예금에 비유하면 날 때부터 거액을 예치한 사람이 있고 적은 금액을 받은 사람이 있을 텐데요. 우리는 그 예금을 하나씩 하나씩 빼먹으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것은 '하나씩'이 아니라 뭉탱이로 인출해야 하는 일이겠죠. 자식이 계층 사다리를 성큼성큼 타고 올라가 원하는 꿈을 성취했다면 적어도 원금은 채울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면 현재를 갉아먹는 삶을 다독이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