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달리는 것의 부작용

생각나는 프니 에세이

by 생각하는 프니

자꾸 추억을 소환하는 버릇이 생겼다면 나이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너무 자주, 혹은 매일 뒤를 돌아보는 습관에 빠져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과거에 메몰 되어 미래를 그릴 수 없습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김창옥 강사의 강의를 봤는데요. 운전할 때 앞을 볼 때는 커다란 앞유리를 보지만 뒤를 볼 때는 조그만 백미러를 보는 비유를 듭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는 작게,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는 큰 시야로 보라는 거죠.


한 살 먹어갈 때마다 지나온 시간이 겹겹이 쌓여 그 하나하나를 들춰보는 일이 늘어납니다. 중년이 되면 '나는 누구인가?', '이대로 사는 게 맞는 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추억을 낱낱이 펴서 그 시기를 기뻐하고 슬퍼하려는 목적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남들 한다고 해서, 멋있어 보인다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사회의 기준을 따라한 것이 아니라 참고만 했을 뿐, 선택과 결단은 오롯이 나의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어느 순간 물음표가 내 주변을 둥둥 떠다닙니다. 정말 나의 선택이었을까?


지나간 일은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달려가라기에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중년이 되어 과거를 헤집고 감성적이 되는 것 또한 자연의 순리인지 모릅니다. 달리다가 숨이 차고 발목이 아파지면 잠시 멈추고 나 자신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무작정 달리는 것의 부작용은 몸의 나이와 법적 나이와 머릿속의 나이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나를 표현하는 단어가 '젊다'에서 '아직 젊다'로 바뀌었는데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철학적 의미가 다분하겠지만 일상을 살아내는 데 그 어떤 철학과 심리학 이론보다도 더 절실한 충고입니다.


지나간 추억이 떠오르면 애처로운 마음에 뭉개려들지 말고 봄날 햇볕에 잘 말려서 하나하나 짚어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