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오후

《수평선에 새긴 이름》

그림자의 오후


우재(愚齋) 박종익


부두에는 그림자 한 채 먼저 와 서 있다

등대 위로 자라는 오후가

바퀴를 달고

그 그림자를 따라 천천히 구른다


길은 처음부터 순한 쪽이었다

목줄 없어도 여느 집 똥개보다 순해서

반항 한 번 없이 자기 중심을 지키며

누구 누구의 친구인지도 모른 채

종일 그림자의 포로가 된다


문제는 말해주지 않아도

절로 자라는 것들이다

나는 그것들이 늘 겁이 난다

밀물에 잠겨 드는 달이 두렵고

파도 울음이 무섭기만 한데

그림자는 가지를 내고

잎새를 피워 올리며

바닷길로 미끄러져

끝내 나에게서 벗어나려 한다


나는 이곳에 가만히 서 있고 싶은데

브레이크를 아무리 갈아 끼워도

멈추지 않는다

썰물은 빛방울을 튕기며 손짓하고

그림자는 수로를 가로질러

끝내 자기 길을 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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