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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극

2021 예술시대작가회 <은하를 횡단하 는 별>에 원고발표

대학살극


우재(愚齋) 박종익


샤갈의 마을에서 대학살이 시작된다

몸통이 잘린 채 누워있는 오방색 무리

생년월일은커녕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어촌 출신들

어린 당나귀 목에는 아직도 흰 피가 낭자하고

까도 까도 속을 알 수 없는 고동

사지가 절단된 채 단단한 속을 드러낸 고등어

대부분 죽은 이들의 속은 겉과 다르지 않다

그 옆에 시장표 검은 비닐관 속에는

열 개나 되는 다리를 늘어트리고 있는 오징어

편육 당한 오징어의 육신을 거둬들여

불판 위에서 거행하는 화형식

그것도 모자라 가위로 다시 토막살인한다

빨가벗겨진 마늘도 한통속이다

아직도 흙에 들어가면 뿌리 내리고

가지 치면서 잎사귀 달 것만 같은데

숟가락과 젓가락에 내장을 다 빼앗긴

빈 접시에는

승자의 웃음이 물컹물컹 묻어 있다

샤갈의 마을은 언제나 죽음의 대서사를 받아들이고

학살로 얼룩진 흔적을 닦아내며

다음 개정판을 준비한다

늘 아침 사무실이 정갈하다

모두가 샤갈인 양 서로 입 다물고 있는 책상들

말년 김 부장의 자리에 상여 꽃이

빠알갛게 달아오르고 있다

더러운 개정판 앞에서 후회가 밀려온다

이제 오십인데

남은 오십 년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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