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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Aug 17. 2024

외로워서 먹던 밥을 뱉어버리다니



드라마나 영화장면에 나오는 홀로 식탁에 앉아 씁쓸하게 음식물을 씹어 넘기는 연기는 혼밥은 미덕으로 여기는 나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장면의 하나일 뿐 그 어떤 공감도 줄 수 없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차려진 정갈한 반찬과 오목조목한 식기들과 나 사이에 고독은커녕 이 순간만큼은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혼자 밥을 먹을 때만큼은 침묵할 수 있다. 상대방과 흐르는 어색한 적막을 깨기 위해 필요도 없는 말을 뱉지 않아도 된다. 어떠한 제스처도 필요 없다. 그저 조용히 씹고 넘기면 된다. 남자친구가 혼자 밥을 먹지 못한다는 말에 학교수업을 내팽개치고 버스를 타러 가는 친구를 보며 친구도, 친구의 남자친구도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는 말을 뱉은 적이 있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외로워서 밥을 뱉었다.


계속되는 무력함과 나약함을 잊고자 일부러 나를 더 움직인다. 일부러 돈을 더 지불하고 좋은 음식들을 위장으로 보냈다. 조금이나마 오늘을 추억하기 위해 타국의 친구가 보내준 재료로 SNS에 자랑할만한 음식을 만들었다. 이쁜 그릇에 정성스레 담고 빨간 체크무늬의 쟁반에 올려 사진을 찍는다.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숟가락에 얹어 맛을 본다. 담백하고 깔끔한 내가 좋아하는 맛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삼키지 못하고 툭 뱉어버린다. 고독함이 온몸으로 퍼진다. 처음 느끼는 이 감정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실은 항상 나를 위로해 주었는데 오늘만큼은 에어컨 소리가 울려 퍼지는 넓은 거실이 표독스러워 보인다.


써져 버린 입을 물로 씻어준다. 무거운 팔을 올려 장갑을 끼고 그릇을 씻는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며 주장하는 배를 무시하고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경험했던 외로움은 낯설고 조금 아프지만 새로운 감정을 알게 된 하루에게 억지로 감사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재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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