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는 죽음이 무섭지 않아"
지적인 느낌의 실버안경을 쓴 옅은 노란색 단발의 그녀에게서 나온 말에 누군가는 아직 젊이게 뱉을 수 있는 말이라며 그 뜻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불순물 마냥 거부하며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고, 오글거리는 감성이라며 비웃을 수도 있을 테지. 다른 누군가는 그 말에 격한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가장 후자의 사람일 수밖에 없을 뿐이고,
죽음 그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현재를 거부하고 천국이라는 이름의 건물을 짓고 구원이라는 계단을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주저앉은 곡소리와 함께 검은 옷을 입은 공간들, 행여나 나의 마지막이 그렇게 비참해지지 않을까 쓸데있는 걱정을 한다. 우리의 마지막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그녀에게 감사를 전한다. 회의적이면서 진취적인 현재를 사는 그녀는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어린 동생이다.
제어할 수 없는 현실의 통증을 느낄 때면
스펀지밥에 등장하는 SpongeBob Production Music - Gator BGM을 재생한다.
온몸을 조이는 근육들이 이완되며 비키니 시티의 해파리가 되는 듯하다. 턱을 치켜올리고 눈은 천천히 감길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그때부터 나는 나라는 제목의 어설픈 독립영화를 홀로 제작하는 감독이 된다.
연출, 기획, 촬영 등 모든 책임과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출연하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위해 감독의 지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본에 침을 뱉어버린다. 영화 장비가 부족하여 촬영이 지연되는 날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감독은 카메라를 끄지 않는다. 영화는 끝이 나야한다. 마지막 장면과 함께 영화 스크린 화면 속에서 모든 출연진들의 이름들이 엔딩 크레딧을 채우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는 그녀에게 자랑스럽게 말한다.
내 장례식은 스펀지밥의 엔딩곡과 함께
펼쳐질 것이라고.
모두가 유니크한 블랙패션으로 각자의 개성을 발산하며, 나의 마지막 순간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이 자리는 다정한 대화와 담백한 농담,
그리고 따뜻한 웃음으로 가득 채워지고
죽기 전 미리 만들어둔 내 삶의 크레딧,
그 속 당신들의 이름이 하얀 벽을 수놓을 것이라고.
그녀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이빨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옅은 미소를 띤 채 이야기에 집중한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있는 이 공간에서
눈물이 흐르더라도 그 눈물은
너와 나의 아름다웠던 추억에 대한 증거일 뿐,
슬퍼서 울기보다는 사랑했기에 웃어주길.
천천히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모두 함께
응시하며 어설펐던 나의 영화에 그대들은
어떤 역할을 맡았던 배우였는지
부디 알아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