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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먹던 밥을 뱉어버리다니

by 시온
드라마나 영화장면에 나오는 홀로 식탁에
앉아 씁쓸하게 음식물을 씹어 넘기는 연기는 혼밥은 미덕으로 여기는 나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장면의 하나일 뿐,
그 어떤 공감도 줄 수 없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차려진 정갈한 반찬과 오목조목한 식기들과 나 사이에는 고독은커녕 이 순간만큼은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혼자 밥을 먹을 때만큼은 침묵할 수 있다. 상대방과 흐르는 어색한 적막을 깨기 위해 의미 없는 말을 뱉지 않아도 된다. 어떠한 제스처도 필요 없다. 그저 조용히 씹고 넘기면 된다. 남자친구가 혼자 밥을 먹지 못한다는 말에 학교수업을 내팽개치고 버스를 타러 가는 친구를 향해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는 말을 뱉은 적이 있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외로워서 밥을 뱉었다.




계속되는 무력함과 나약함을 잊고자 일부러 부지런히 움직인다. 일부러 돈을 더 지불하고 좋은 음식들을 위장으로 내려보냈다. 조금이나마 오늘을 추억하기 위해 친구가 선물해 준 재료로 SNS에 자랑할만한 요리를 만든다. 좋아하는 그릇에 정갈하게 담고 빨간 체크무늬의 쟁반에 올려 사진을 찍는다. 풍요로운 이 순간을 바라보면서 숟가락에 얹어 맛을 본다.


담백하고 깔끔한 내가 좋아하는 맛임에도 불구하고 삼키지 못한 채, 차가운 싱크대로 걸어가 툭 뱉어버린다. 고독함이 온몸으로 퍼진다. 처음 느끼는 이 감정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실은 항상 나를 위로해 주었는데 오늘만큼은 공기 청정기가 소리가 울려 퍼지는 넓은 거실이 표독스러워 보인다. 고정된 행복이라 믿었던 모습들이 시간에 따라 조금씩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음을 느낀다.



써져 버린 입을 물로 헹궜다. 무거운 팔을 들어 고무장갑을 끼고 그릇을 씻는다. 여전히 배가 고프다며 투덜대는 배를 무시한 채,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낯설고 조금 아픈 감정을 경험했지만, 새롭게 부여된 감정에는 '감사함'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준다. 이 감정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소중한 재료가 되길 바라며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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