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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Aug 04. 2024

과학중독 사회

무지성의 커튼

2024년의 절반을 넘어선 시점에서 뒤돌아 본

현재의 학문적 트렌드는 여전히 '과학'이다.


인터넷 콘텐츠의 다양화로 인해

과학이라는 학문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탓이다.


양자역학, 도파민 중독, 물리법칙 등은

흔히 과학자라 불리는 전문가들에게 유용한 콘텐츠 주제가 되었다.


귀신을 만난다면 지평좌표계를 어떻게 고정했는지 물어야 한다는 주장과

산타 클로스의 선물 배달 속도를 계산하여 그것의 불가능성을 입증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 콘텐츠를 접한 사람 혹은 내가 

과연 지평좌표계 혹은 속도에 대해 정확히 이해했을지는 의문이 든다.


하나의 과학적 혹은 수학적 재미를 위해선

그 속에 감춰진 수많은 수식과 기호는 소비자에게 결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대개 그것을 하나의 소비거리로 여길 뿐

그것에 대해 진실된 호기심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단순히 내가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내지 그 과정을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소비자에겐 충분한 것이다.


또한 그 지식 뒤에 있는 어마한 전제들을 배제하더라도

내 손 안에 결과를 쥘 수 있다는 것은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하물며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때 취해야 할 자세'와 같이

우리의 일상적 공상에 대한 답변 역시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태도는 매우 단편일률적이다.


우리는 자세한 지식의 도출 과정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상에 대한 답변이라는 재미만을 원한다.


이것은 공허한 욕망이며

무지성 사회에서 일종의 허영심을 심어주는 장치와 같다.


과학은 실로 그 허영심을 효율적으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손쉬운 가십거리가 된다.


특히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은

그 효과를 증대시키기 충분하다.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조차 

이토록 작은데 우리는 어느 권리로 자연을 망치는가?"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의 가치에 맞출 필요 없이 내 삶을 살아가면 된다."


이 문장들은 참으로 마음에 울림을 주며,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 아주 좋은 문장으로 이용될 것이다.


이러한 말을 들은 사람들 중 과연 누가

이 원자라는 물질의 고귀함과 유전자의 놀라움을 이해하고 있겠는가


그들에게 결국 과학은 

자신의 허영심을 뒷받침해 줄 든든한 뒷주머니와 같다.



이 문제의 핵심은 과학적 지식의 대중화가 아니라

사회의 무지성과 그것을 채웠다는 대중의 헛된 착각에 있다.


자신의 지적 호기심에 의한 자발적 탐구가 아닌

그저 흘러 들어온 소비에 대한 맹목적 수용이다.


그러한 지식 수용 방식은 

검증의 절차를 가지지 않으며 그저 전문가의 연설을 추종한다.


이는 사이비 종교와 다름없으며,

곧 현대 사회의 무지성에 대한 커튼과 같다.


우리는 그 커튼을 열어젖혀

우리의 무지목매함을 발견해야 한다.


현재 그 커튼의 소재는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이지만

언제든 커튼의 소재는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즐거움을 향유하는 능력이 낮은 사람일수록 손쉽게 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반면에 
그런 수준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행복은, 세상이 늘 그렇듯,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완전한 것을 감내할 만하다면, 그것을 참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 때문에 얻게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하고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결국 만족하는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워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하는 바보보다 불만을 느끼는 소크라테스가 더 나은 것이다. 바보나 돼지가 이런 주장에 대해 달리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한쪽 문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비교 대상이 되는 다른 사람들은 두 측면을 모두 잘 알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서병훈 역,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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