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벌써 여섯 번의 여름을 맞았다. 분명 새하얀 교복을 꺼내 입던 열여섯의 아이가 어느덧 누리끼리하고 답답해 보이는 정장을 입고 세상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래,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나도 사회를 겪고 그렇게 누리끼리해졌다.
지금은 아니지만 난 한 때 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어느덧 내 꿈이 이렇게 살고 싶다, 저렇게 살고 싶다 같은 동경이 아니라 어떻게 죽어야 편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때만 해도 난 한국에서 태어난 학생이라면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줄 알았다. 그런 죽음과 삶의 줄다리기 같은 인생을 겨우 겨우 연명하고 있을 때면, 늘 따뜻한 미소를 품은 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잘 지내?”
별 거 아니지만 기분 좋은 말. 누군가 내 안부를 궁금해하고, 누군가 이 보잘것없는 나를 찾는 그런 말. 그 아이는 늘 그랬다.
난 평소 친한 사이에도 엄청나게 낯을 가리고, 남녀노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그 사람 앞에서마저 낯을 가리는 엄청나게 내향적인 아이였는데, 그 친구 앞에서는 늘 사람들에게서 느껴졌던 기분 나쁜 적막이 없었다. 어떤 말도 청산유수처럼 이어갔고 때로는 민감한 주제의 이야기도 그 아이 앞에서는 편하게 꺼냈다. 그 아이는 그런 내 모습마저 습자지처럼 얇은 모습으로 겸허히 받아줬다
그때만 해도, 어른들이 말하던 남녀 간의 친구사이는 없다 따위의 말을 의심하고 거부했다. 그 친구와는 단 둘이 여행을 가서 그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그런 상상을 해도 친근함에서 피어나는 역겨움만이 자리할 뿐, 수줍음과 같은 사랑의 감정은 전혀 가늠하지 않았다. 우린 그런 사이였다.
남녀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나뉜 세상 속에서 동성에게 하지 못하는 비밀과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풀어내고, 심심하면 뭐해? 하며 대충 입고 나온 옷차림으로 영화나 보고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헤어지는 사이. 때론 자기가 좋아하는 같은 과 짝사랑을 얘기하며 고생한 이야기도 했고, 나도 매번 실패하는 사랑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심지어 남자 친구가 있을 때에도 난 자주 그 친구를 만났다. 전혀 껄끄러울 일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친구와 둘이 만나 떡볶이를 시켜먹고 사랑에 대한 핀잔을 늘어놓다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하지만 사건은 어제 터졌다. 군대 동기를 만나고 온다던 그 친구가 자정을 알리는 시간, 비틀대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상당히 취한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 난데없이 ‘기분 나쁘고 어색한 적막’을 만들어 냈다. 조용히 비 오는 소리만 들리고, 수차례의 물음을 던져도 그 아이는 답이 없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손에 쥐고 있던 쇼핑몰의 장바구니가 결제를 이뤄냈을 때 그 아이가 입을 뗐다.
“나 아무래도 너 좋아하는 것 같아.”
결국 그 말을 통해서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을 거라는 내 확신이 산산이 무너졌다. 그리고 내가 5년간 쌓아 올린 우정마저 조각나버렸다. 누군가는 그 친구의 마음을 받아주면 안 되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선 나는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엿한 남자 친구가 있으며 그 아이를 보면 작은 언니를 보듯 가족의 느낌으로만 보인다. 사랑의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친구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그 5년의 우정을 깨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제의 그 말이 단순히 ‘술에 취해 홧김에 한 말’ 따위로 치부하며 이 아이를 만날 자신은 더더욱 없다.
왠지 어제 난데없이 비가 많이 오더라.
그러게 어제는 왠지 보내야 할 서류를 잘못 보냈더라.
이 글은 10시 38분에 작성하기 시작해서 30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작성했다. 왜냐면,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거든. 혹시 잠깐 전화할 수 있녜. 나 어떻게 말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