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폰
올 3월에 신학기 기념 나 홀로 자체 행사로 폰을 바꿨다.
독서 모임의 멤버가 폴더폰을 반으로 접은 후 사진을 찍는 것이 참신해 보였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도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바꾸면 폴더폰으로 바꿔야지.
망설임 없이 폴더폰은 내 주머니에 골인했다.
몇 달 동안 꽤나 만족하며 사용했다.
귀여운 모양새와 간편함에 애정마저 싹텄다.
평소에 폰 케이스는 개통한 지점에서 사은품으로 주는 것으로 사용했다.
이번에는 거금을 투자하여 예쁜 케이스로 옷도 입혔다. 어쩐지 사은품으로는 이 아이의 미모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사랑이 꽃피는 나무였던 아이가 탈이 났다. 아니 정말 사망했다.
지난 주말, 충전을 하는 중에 정확히 딱 중앙에 그곳에 있으면 안 되는 가는 빛이 새어 나왔다.
실금처럼 환한 빛이 그 아이의 배를 가로지르면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이게 뭐지?
엄마, 액정 나간 거야! 내가 폴더폰 액정 잘 나가니까 하지 말라고 했지?
딸이 호들갑을 떤다.
중간 부분의 아이콘은 클릭을 해도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 전화, 은행, 지하철, 사진...
하필이면 안 되는 부분에 사이좋게 놓여 있는 것들이 내가 평소에 자주 사용하고 꼭 필요한 아이콘이었다.
낭패로다!
모임에 가는 도중에도 불통은 계속되었고, 만나서는 사진 한 장 찍지 못하는-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많이 찍고 밴드에 올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난관에 봉착했다.
와~이렇게 불편할 수가...
마침 주말이라 서비스센터에 갈 수 없으니 월요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일요일 아침이 되니 아이는 혼수상태이다.
그나마 조금씩 되던 다른 아이콘도 먹통이다.
열심히 사수하던 캐시워크의 챌린지 인증을 못하고, 손목닥터에 적립도 안되니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나의 시름도 깊어진다. 웁스!
지하철 오고 가며 밀린 넷플릭스 시청하던 것도 스톱, 네이버 지도가 안되니 약속 장소 찾아가면서도 몇 번이나 길을 물으며 갓 상경한 시골 할머니가 된다.
드디어 월요일, 물어물어 서비스센터에 도착하여 진료를 시작할 때는 화면의 반은 시커멓게 죽었고 나머지도 활성화는 되지 않았기에 가뿐하게 사망을 진단받았다.
액정이 완전히 깨졌네요. 아마 충격을 가했을 겁니다.
나는 펄쩍 뛰면서 손사래를 친다.
절대 떨어진 적도 없고 내가 인지한 범위 내에서 충격을 가한 적은 없다고.
사진을 찍어 확대해서 보여 주며 진짜 티끌 같은 작은 흠집을 지적한다.
아니, 개통한 지 4달도 안된 새 폰이 눈 씻고 봐도 잘 보이지 않는 흠집인지 때문에 이렇게 사망한다면 처음부터 불량품이 아닌가요?
인지 못했더라도 아마 충격을 입었을 겁니다.
아니, 아니. 그 정도의 충격으로 시망 한다면 누가 폴더폰을 사용하나요?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싸다는 폰이잖아요.
유상으로 수리하면 37만 원이 나올 거라는 폭탄선언에 나는 잠시 멘붕이 왔다.
아니, 아니, 참 내. 새 폰으로 교환을 기대하고 왔는데 무상으로 교체해 주세요.
나는 정말 떨어뜨린 적도 충격을 가한 적도 없다고요!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진 상담원이 제의한다.
그럼, 내일 다시 방문해 주세요. 무상으로 교체하는 데는 시간이 2~3시간 걸리니 지금은 곤란해요.
근무 중에 다시 오기 힘드니 그냥 맡기고 내일 퇴근하면서 찾을게요.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
불편하지만 하루야 어찌 되겠지요. 남편에게 전화 한 통만 하고요.
집으로 오면서 항상 전화를 하는 남편이 당황하고 걱정할까 봐 스마트폰의 사망소식을 알린다.
케이스에서 꺼낸 아이를 두고 오자니 자식을 떼 놓고 오는 것처럼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이쯤 되면 반려폰이구나. 잠들지 않는 한 내 손에, 내 주머니에, 내 가방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구나.
거리를 나서니 이 넓은 세상에 혼자 뚝 떨어진 고립감이다.
망망대해에 홀로 표류하는 공포감마저 밀려온다.
두 손 두 다리 모두 묶여 있어 마트에 가는 것부터 안된다.
모든 카드를 그 아이가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한 손에 쏙 들어가는 그 조그만 아이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스마트 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똑똑한 아이가 내 생활의 대부분을 관장한다.
그러기에 부작용도 만만찮다.
스마트 폰 없이는 많은 일을 할 수 없으니 생활이 너무 불편하고 불안하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도 폰에게 떠넘기고, 내가 찾을 수 있는 길도 폰에게 의지한다.
뇌세포가 쪼그라들고 전두엽이 퇴화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렇다.
단 하루 떨어뜨려 놓았을 뿐인데 다음 날 그 아이를 만났을 때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살아 오신 듯 반가웠다. 다시 나는 사회망에 꼼꼼하게 연결되어지고 안정을 찾는다.
나의 부재로 궁금했을 사람들에게 톡을 보내고, 전화를 하고, 인증샷을 올린다.
비로소 나와 그 아이가 또 완전한 한 몸이 된다.
나는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여우인가? 스마트폰을 길들이는 어린 왕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