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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슬기로울

by 정유스티나

저녁을 먹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며 두런두런, 깔깔대며 재잘대는 아이들 소리에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 시간이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의학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요즘 내가 애시청하고 있는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따뜻한 감동을 기억하기에 설렘과 기대로 시청했는데 역시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다. 제목부터 위트 있게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1년 차들 바보인 줄 환자들은 다 알아라고 말하는 대사가 생각나서 큭큭 웃음이 새어 나온다.

출연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신인이라 풋풋함과 사랑스러움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또 다른 큰 기쁨이었다. 청춘배우들의 싱그러운 케미에 저절로 엄마, 아니 할머니 미소가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주인공은 5인 5색으로 모두 독특한 매력과 유쾌한 분위기로 극을 이끌어 가기에 진한 감동의 눈물과 함께 파안대소를 불러오기도 했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공의들의 성장과 일상, 그리고 인간미 물씬 풍기는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드라마라서 아이들과 보기에도 좋았다.

극 중 한예지가 연기하는 김사비는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1년 차 전공의인데, 워라밸을 꿈꾸지만 현실은 예측 불가능한 수술들로 가득한 고된 전공의 생활을 경험하며 성장해 가는 인물이다. 완벽주의 모범생인 김사비는 학업 성적은 뛰어나지만, 환자와의 소통에서는 종종 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사비만의 진정성과 순수한 해결책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서서히 진정한 의사로 성장하는 따뜻한 이야기의 중심캐릭터이기도 하다. 나는 특히 김사비에게 마음이 갔다. 딸의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안경을 쓰고 꺼벙하지만 번득이는 두 눈을 가진 사비의 외모뿐 아니라 가늘고 긴 체형마저 딸과 닮았다. 게다가 뭐든지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똑 부러지는 성격이 마치 우리 큰 딸이 화면을 뚫고 들어간 줄 알았다. 대학 4년을 장학금으로 공부해서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더니 졸업할 때 과 수석으로 상을 받아서 부모의 어깨를 하늘까지 솟게 해 준 딸의 모습을 김사비에게서 발견했다. 똑똑함에 비해서 행동은 허술하고 순진하기까지 하는 성품마저 덩덕꿍이라는 별명의 딸과 닮아 있어서 더욱더 애정이 갔다.

그리고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과 애순이의 아들이자 금명이 동생 은명이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강유석 배우가 열연하는 엄재일이라는 캐릭터도 너무 귀여웠다. 실제로 아이돌 출신인데 극 중에서도 아이돌 출신의 의사이다. 공부보다는 무대가 익숙했던 과거와 달리 성적은 하위권이다. 하지만 넘치는 열정과 선함으로 여러 위기를 딛고 성장하여 따스한 의사가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잘 그려냈다. 넉살 좋고 유쾌한 모습에 반해서 이런 사위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침만 흘렸다. 본인이 엄청 잘 생김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잘 생겼다는 걸 모르는 사람인 것 같은 배우이다. 장난기와 허당미를 겸비했지만 누구보다 가슴이 따스한 핫팩 같은 엄재일은 어느 병원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걸까?


아이들도 긴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푹 빠져서 온 가족이 함께 보고 있는 유일한 드라마이다.

갑자기 손자 녀석에게 물어본다.

"범아, 너도 자라서 저기 형아처럼 멋진 의사선생님될 거야?"

"아니~너무 무서워. 피가 나잖아."

"흠, 그렇구나. 그럼 범이는 뭐가 될 거야?

"자동차 박사가 될 거야."

"그래, 의사 선생님 너무 힘들고 무서우니까 너는 자동차 박사가 되어서 할머니에게 멋진 차 선물해 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하는 손자에게 살짝 실망(?)했지만 차선책으로 자동차 박사라는 흡족한 답을 이끌어 냈다.

내친김에 쌍둥이 남매인 손녀에게 묻는다.

"지아야, 너는 저 예쁜 언니처럼 의사 선생님 될 거야?"

"아니, 싫어. 공부 많이 해야 하잖아."

헉! 그렇지 우리 지아는 공부하기를 싫어하지.

"그럼, 뭐가 될 거야?"

"음~나는 할머니를 예쁘게 해 줄 거야. "

무얼로 나를 예쁘게 해 준다는 걸까?

"나느은~네일아트해 주는 사람이 되어서 할머니 예쁘게 꾸며 줄 거야."

두둥!

"흠, 지아야. 고마워. 네일아트해서 돈 많이 벌고 할머니 예쁘게 네일아트 해 줘."

평생 네일아트라고는 한 적이 없는 나는 늦복이 터질 예정이다.

언젠가는 자립할 우리 손주들도 드라마 속 청춘들처럼 많은 좌절과 깊은 고통이 따르겠지.

하지만 그들이 고난 속에서 성장해서 언젠가는 슬기로울 의사가 되듯이 우리 새끼들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나또한 언젠가는...슬기로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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