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질
재미가 없다.
아이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재미있게 놀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 학교 생활이었는데.
이제 학교 가는 것이 무섭고 공포스러울 때도 있다.
예전 같지 않은 교육현장의 붕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많이 힘들다.
이제 하산할 때가 되었나 보다.
카리스마 있으며 따스한 정이 담긴 훈육에 어지간한 애들은 서서히 변해 가고 종국에는 백기를 드는 경험이 매년 수차례이었다.
그런데, 올해 내가 맡은 6학년 몇 명 아이들은 일방통행, 마이동풍이다.
때로는 우쭈쭈 달래 보고, 때로는 따끔하게 말로 속사포 공격을 해도, 때로는 단호하게 행동을 저지해도, 때로는 선생님 좀 봐 줘 치사빵구 읍소를 해도.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자각을 안 하고 오히려 더 기고만장해진다. 당연히 반성의 조짐은 희박하다.
내 손녀딸과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아이들의 무례함과 엇나감은 나한테 엄청난 대미지를 입힌다.
제일 먼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자괴감에 정신이 까무룩 해진다.
그다음에 이어서 오는 건 신체적인 반응이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뜩해지며 두 손과 다리가 벌벌 떨린다.
망나니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시그니쳐 대사,.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구나!
나도 모르게 흘러넘친다.
내가 너무 오래 선생질을 했구나!
선생질이라는 표현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평생 이 표현을 입에 담은 적도 없고 담을 일도 없었고 담기는 더더욱 싫었다.
그런데, 이제 저절로 자책하며 중얼거린다.
선생질을 너무 많이 했구나. 이제 떠나야 할 때이다.
학기 초, 첫 시간에 당부한다.
선을 넘지는 말라고.
학생으로서, 어린이로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선만 지키라고.
그 선을 넘는 순간 평화는 깨지고 전쟁 같은 고통만 따를 거라고.
그건 상대를 위한 존중일 수도 있지만 자기의 인간성을 지키는 데드라인이라고.
거의 매일 매 시간마다 남사당패가 줄타기하듯이 선을 넘은 듯 안 넘은 듯 선을 넘는 아이들의 행동으로 위태위태한 곡예를 한다. 수월한 반은 없고 매번 위기감에 아슬아슬하다.
오죽하면 가르치는 교재 첫 장에 시뻘건 글씨로 휘갈겨 써 놓았다.
열받으면 나만 손해
마음의 화가 욱 올라오면 슬며시 책장을 넘겨 주문처럼 이 글을 되뇐다.
열받으면 나만 손해.
처음에는 나한테만 그런가 하고 더욱더 예민해져 있었다. 우쒸! 할머니라고 무시하나?
물론 내 입으로 너 같은 손주가 셋이다 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액면가를 속일 수 없기에 지레 자격지심?의 발로이다.
급식시간에 전담 선생님들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집에서 새던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를증명한다.
꼬리가 길면 잡히고 도가 넘치면 탈이 난다.
나와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반을 교체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
평소에도 내 속을 어지간히 긁던 아이였는데 교실에서도 누수는 계속되었나 보다.
피해? 아이와의 격리조치로 반을 교체하는 극약 처방까지 내린 것이다.
당연히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나타남에 대한 경악과 불안은 팽배해졌다.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나아지지는 않을 것 같은 아이들의 횡포에 가까운 불손과 수업 방해 행동을 어찌 대처할지 대략 난감이다. 나의 역량과 아량과 인내심도 바닥을 보인다.
아이들이 백기를 들기 전에 내가 먼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퇴장할 판이다.
교사가 미치기 일보 직전에 방학을 하고, 엄마가 미치지 일보 직전에 개학을 한다.
이제 몇 일만 미치지 않음 방학을 한다. 제대 말년 병사가 날짜 지우듯이 하루하루 견딘다.
그래, 이제 자연인의 삶을 살자.
동네에서 손주 보는 할머니가 되기 싫다는 은근한 욕심과 치기로 버틴 세월이다.
우리 가족들이 나에게 하는 말을 이제는 들어야겠다.
"당신 힘들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 것 같네. 이제 그만해요~더 험한 꼴 보기 전에. "
"엄마, 이제 후배들 일자리 뺏지 말고 귀엽게 글이나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