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 속의 설악
비는 눈보다 정직해서 좋다.
비는 눈보다 쓸쓸해서 좋다.
비는 눈보다 시원해서 좋다.
나는 비가 좋다.
폐부 깊숙이 박혀서 사람들의 위선과 거짓의 옷을 발가 벗겨주는 비.
온 세상을 하얗게 포장하여 도시의 더러움도 은폐하는 눈보다
나뭇잎의 먼지와 골목의 오물마저 쓸어가 버리는 비는 정직해서 좋다.
-비의 상념. 정유스티나-
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은 그 해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다.
초등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온 우리 사이키-푸쉬킨의 영어 발음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소녀라는 뜻. 푸핫!-4명은 의기투합했다. 설악산에 가는 거야 렛츠 고!
강남고속터미널에서 강릉행 버스를 탔을 때만 해도 날씨는 쾌청했다. 물론 찜통더위였지만 여행의 설렘으로 그것은 문제 되지 않았다.
2박 3일의 여정에 걸맞은 텐트와 일용할 양식이 소중하게 담긴 자기 키만큼 큰 배낭을 하나씩 둘러메고 청춘을 불사를 준비는 끝나 있었다.
드디어 그리던 설악에 도착하여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색폭포쯤 왔을 때 하늘은 수상했고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이 심상치 않았다. 더욱더 굵어지는 빗방울을 온몸으로 그대로 맞으며 뚜벅뚜벅 전진 또 전진!
우산도 없고 우의도 없고 가진 건 패기로 똘똘 뭉친 몸뚱이 밖에 없던 우리는 그렇게 물에 빠진 생쥐처럼 걷고 또 걸었다.
그게 참 이상했다.
처음에는 빗방울 하나 떨어지는 것도 싫고 힘들더니 아예 포기하고 맞기 시작하니 어찌나 시원하고 후련하던지.
내 인생 통틀어 그때처럼 빗줄기에 내 몸과 영혼을 내 맡긴 적이 있었던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단 한 번도 없었다.
헉헉대는 숨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를 집어삼킨 빗소리만 적막을 깼고 아무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는 더욱더 거세지고 주위 사람들은 하나 둘 등산을 멈추고 텐트를 치고 있었다.
더 이상 가는 건 위험하다는 말도 가볍게 묵살하고 우리는 뭐에 홀린 듯 정상을 향해서 오르고 또 올랐다.
그건 어쩜 무한 도전이 아니라 무모한 도전이었고 젊음의 객기였을지도 모른다.
산에서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비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빗속에서 잠들 공간이 필요했다.
비를 뚫고 텐트를 쳤다.
어떻게 그 빗속에서 텐트를 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초인의 힘이 솟았는데 그건 아마도 청춘의 뜨거운 피였나 보다.
쏟아지는 빗 속, 텐트 안에서 밥을 짓고 꽁치통조림, 감자, 양파, 고추장 초간단 재료로 끓인 찌개를 먹었던 그날의 저녁밥은 내 생애 최고의 만찬으로 자리매김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우리의 우정도 겹겹이 쌓였다.
다음 날 아침에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빗줄기는 조금은 가늘어져 있었다.
밤새 사시나무처럼 떨어서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찌뿌둥했다.
텐트의 지퍼를 열고 바깥에 발을 딛는 순간 일동 비명을 질렀다. 악!
우리가 텐트 친 바로 옆이 낭떠러지가 아닌가?
간밤의 비로 인해서 흙이 파이고 떠내려 가서 더욱더 휑해진 황토흙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다 보니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조금만 더 나아가 텐트를 쳤고 조금만 더 비가 더 심하게 내렸다면 우리는 단체로 황천길 가는 버스를 탈 뻔했다.
목숨을 담보로 우린 호연지기를 익힌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급하게 텐트를 철거했다.
그래도 우린 얼마나 즐거웠고 깔깔거렸는지 회상하는 지금 나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다시 장비를 챙겨서 대청봉을 향하여 걷고 또 걸었다.
우리는 꼭 정상을 찍어야 했다.
그까짓 비 앞에서 우리의 목표를 수정하는 일은 애초에 고려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냥 내려가자는 친구는 없었다.
무언의 결단으로 전진 또 전진!
드디어 대청봉에 우리의 발자취와 숨결을 남긴 그 순간이 마치 어제 일인 양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환희와 성취감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동에 서로를 얼싸안고 빙글빙글 강강술래를 돌고 있었다.
눈물 콧물 다 빼며 누가 보면 에베레스트라도 정복한 마냥 기쁨에 도취했다.
그 순간에도 비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했다. 우라질.
정상을 찍고 나니 숙제 하나 끝낸 기분으로 그까짓 비쯤이야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속이 다 후련하고 쌓인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린 듯 몸이 가벼웠다.
이제는 친구가 된 비와 함께 하는 하산길은 속도가 붙어서 휘리릭 내려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박 3일 계획한 것을 1박 2일로 수정하고 하산한 점이다.
일단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속초에 도착하여 여관에 들어갔다.
지금의 모텔이 그 당시는 여관이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목욕을 하니 온몸의 세포가 다 일어나서 노래를 불렀다.
젖은 옷을 욕조에 단체로 때려 놓고 발로 밟아서 세탁했다.
세탁소를 찾아서 탈수를 하며 꿉꿉했던 우리의 마음도 뽀송뽀송하게 말렸다.
1박 2일 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빗님의 잔재를 깔끔히 떠 내려 보낸 것이다.
생사고락을 함께 한 친구들의 말간 얼굴 속에서는 뿌듯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여관에서 1박을 하며 또 얼마나 많은 얘기들은 나누었는지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그 순간의 행복과 우정만은 오롯이 기억 저편에 남아 있다.
휴가의 마지막 날, 다시 강남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타려니 이제야 해님이 빵긋~그야말로 얄밉도록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야! 근로여성이 첫 휴가로 떠난 여행에 비만 쏟아지더니 왜 이제야 나타나니? 너무 심한 것 아냐?”
누군가의 볼멘소리에 모두들 웃음이 터졌다.
풋풋했던 젊은 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준 빗 속의 설악 등반.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어김없이 그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의 친구들도 어느 하늘 아래에서 기억하고 있으려나.
전화기가 뜨겁도록 통화를 해 봐야겠다.
다시 한번 뭉쳐서 이제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설악을 오르고 싶다.
다시 오른 설악에서 두고 온 우리 젊은 날의 발자국과 숨결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