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은 마지막까지 격동과 혼란과 비통함으로 마무리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한 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것만 해도 서럽고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데, 천지가 무너지는 대형참사가 일어났다. 연말을 앞두고 현실은 심란하지만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을 보내고 있던 중에 속보로 전해지는 제주항공 참사 소식에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휩싸인 것이다.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무안항공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7C2216편은 세밑 12월 29일 오전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했다. 항공안전 총괄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태국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기종 보잉 737-800) 여객기가 이날 오전 9시쯤 무안국제공항에 도착 예정이었지만, 오전 9시 3분쯤 공항 19번 활주로 방향으로 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활주로에서 이탈했다. 여객기는 이후 활주로에 설치된 공항 항해 안전시설물을 치고 외벽과 충돌했다. 예기치 못한 착륙으로 여객기 동체는 화염에 휩싸였고 기체는 꼬리 쪽 부분만 남긴 채 전소됐다. 이 사고로 전체 탑승자 181명 중 승객 175명과 조종사 2명, 승무원 2명 등 179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기체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소됐다. 국내에서 발생한 여객기 사고 중에선 사망자가 가장 많았고, 해외에서 발생한 국내 항공사 참사까지 포함해도 1983년 소련에 격추당한 대한항공 여객기 참사 269명 사망과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 괌 추락사고 228명 사망에 이어 세 번째로 인명 피해가 컸다. 최연소 사망자는 3살이라고 해서 온 국민의 마음이 아프다. 제주항공 여객기 대참사의 발단은 조류 충돌이었던 것으로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과거 국내에서 발생한 여객기 조류 충돌 사고에서는 조류 출동 후 엔진 과열과 추력 저하 등 이상 징후를 포착한 조종사가 고도를 높이는 복행에 이어 착륙까지 성공해 큰 사고만은 남았다. 반면 이번 참사는 기체가 충분한 고도까지 다시 떠오르지 못한 것으로 보여 조류 충돌 직후 양쪽 엔진이 심각한 손상을 입어 총체적 조종 불능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추론에 힘이 실린다는 뉴스 보도를 보며 온 국민은 비통함에 빠졌다.
나는 그날 감기로 인한 두통으로 머리를 땅바닥에 붙이고 기어 다녔다. 참으로 오랜만에 심하게 앓는 나를 보며 남편은 부르르 떨었다. 건강할 때는 죽음이 두려워서 맞이하고 싶지 않고 억울해서 어떻게 죽지? 했다. 그런데 아프니까 차라리 콱 죽어버리고 싶었다. 생로병사가 인간의 숙명이라면 담담하게 받아들여야겠고 죽는 것을 소원할 날도 오겠구나 생각됐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연말이라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길, 결혼을 앞두고 남자 친구와 여행을 갔다가 입주한 지 3일 된 신혼집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사람. KIA 타이거즈 직원이어서 우승으로 인해 바쁜 일정을 보내다가 연말을 맞이해서 아내와 최연소 희생자인 3살 아들과 함께 태국 여행길에 올랐다가 온 가족이 몰살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작별인사 한마디 못하고 녹아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건 아니다. 여행의 설렘과 추억이 식기도 전에 그것도 고국 땅 종착지에 다 와서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마지막 순간까지 뭐라도 해야만 했지만 끝이 보이는 시도에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특히 기장과 부기장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어떤 말로도 진정되지 않을 만큼 황망하다.
온 국민의 애도에 하늘이 울고 땅이 울었지만 일어난 사실이 안 일어난 일이 될 수는 없다.
참사가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났다. 외출했다 돌아온 딸이 뜬금없이 묻는다.
“엄마, 엄마 언젠가는 죽음이 오잖아. 엄마, 제사 지내길 원해?”
“아냐. 성당에 연미사 넣으면 돼.”
“엄마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아들이 없으니 내가 엄마 아빠를 책임져야 할 것 같아서.”
‘뭐야. 벌써 그런 생각을 해. 기분 나쁘게?’ 속으로 입이 삐죽 나왔다.
“전철 타고 오는데 옆에 모녀지간에 제사상 이야기를 하더라고. 홍동백서니 뭐니 하면서. 갑자기 우리 엄마 제사상에는 엄마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려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주항공 참사로 마음이 심란하기도 하고 해서...”
“아~나 피자는 싫어.”
평소에 피자를 좋아하는 엄마를 기억할까 봐 손사래를 친다. 심하게 앓은 후인지라 피자나 빵 등은 꼴도 보기 싫었다. 된장에 고추장 넣고 팍팍 비벼서 먹어야 메슥거리는 속이 가라앉고 김치 국물이라도 퍼 먹어야 밥을 넘길 수 있었기에 다급하게 외친 것이다.
“아이고, 엄마. 몸 좀 낫고 나면 또 피자 먹고 싶을 텐데?”
절대 안 그럴 것 같지만 암튼 지금은 아니라고!
눈에 슬픔 담은 채, 입으로는 웃으며 딸이 또 한마디 한다.
“그런데 엄마, 엄마 돌아가시고 제사상에 엄마 좋아하는 음식 올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엄마 살아 계실 때 맛있는 음식 같이 먹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다녀야지. 그렇지 엄마?”
“그래, 맞다. 나도 우리 엄마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뵈야겠다.”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치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항공 참사로 생각이 많아졌다.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예고하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서 나의 삶이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을 아프게 느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적 같은 일상을 나는 너무나 당연시하며 누려왔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간과하며 불만이라는 독가스로 온몸이 뿌옇게 차 올랐다. 사랑한다는 말은 쓰면 쓸수록 퐁퐁 솟아나는 화수분임을 잊고 살았다. 더 사랑하고 더 이해하고 더 베풀며 살아야지 하는 교과서적 교훈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진짜 그렇게 살게 될 것 같아서 작은 위로가 된다.